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카펫 위 흩뿌려 놓은 핏빛 보석들을 밟으며, 나는 지베르니의 밀밭을 헤매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한권의 책으로 모네의 지베르니와 수련을 사랑하게 되었고 언젠가 그 붓의 터치를 실제로 보리라 다짐했다.
세 여자가 있다. 파리 사람이었던 모네가 너무나 사랑해서 정착한 마을 지베르니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열한 살 파네트와 아름다운 지베르니에서 도망치고 싶은 삼십 대의 스테파니, 이 두 여자의 모든 걸 알고 있는 팔순의 노파. 이 세 여자를 모두 사랑한 빈센트와 자크, 그녀들이 사랑한 폴과 로랑스. 모네의 정원과 그의 수련 연작이 탄생한 성지 같은 곳에서 그녀들은 벗어나고 싶었고 살인사건을 계기로 탈출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 중 단 한 명만이 이 감옥 같은 곳에서 벗어 날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줄거리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스포일러는 더 더구나 하고 싶지 않았는데 책을 읽고 난 후 분명히 나처럼 이 아름다운 마을에 가보고 싶은 사람이 생길 것 같은, 그래서 지켜주고 싶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욕심일까 괜한 걱정일까.
나는 자크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동정하며 그를 지지한다. 사랑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한결같고 어떤 일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으며 죽는 날까지 오로지 그녀만 바라볼 것.
그러나 그는 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했다. 그녀를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드는 대신 절대 그녀의 사랑은 받을 수 없는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거래를.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거래는 성사되었고 죽는 날까지 충분히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과연 그는 1%의 미련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난 걸까?
몇 달 전 이 책에 등장하는 파네트 같은 그녀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았다. 잠시 잊고 있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나서 더위 탈출용 추리소설을 읽으려다 문득 이 책이 생각나서 읽게 되었는데 괜히 읽었다. 내 가슴은 한 여름 정오의 태양처럼 불타올랐고 뜨거운 감정이 나를 감싸 안았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이 책의 모든 풍경들이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그 안으로 들어가 투명인간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지베르니의 모네와 그의 연못 그리고 수련이 너무나 보고 싶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그의 그림도 갖고 싶어져서 아쉽지만 휴대폰 화면가득 수련을 담아 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한 미셸 뷔시는 지리학과 교수이면서 정지학자이고 훌륭한 작가이다. 신은 참 불공평하지 않은가 이런 배경이라니! 영화 (식스센스)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 이런 좋은 글이 나오는지 의문이다. 아니다 신이 불공평해서 그렇겠지.
어려서부터 내 꿈은 현모양처였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대게 비웃었지만 한결같이 나의 꿈은 나보다 20cm 정도 큰 키에 한 팔로 나를 감싸 안으면 그의 품에 쏙 들어갈 수 있는 말없이 다정한 그 사람 곁에서, 죽을 때까지 그만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이었다. 청소년기를 거쳐 갓 성인이 된 나의 사랑은 일방적인 나의 집착이었으며 억지였고 쓴 초콜릿 같았다. 단 1%의 만족도 없는 그런 사랑들로 아파하고 자학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진실은 자크와 같은 사람을 만나 그 깊이를 알 수 없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했는데 현실에선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내가 그 흉내를 내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유년기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아래에서 일방적인 사랑을 받아온 탓이라 생각했고 원망했다. 아니다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이론을 발표했는데 사랑은 친밀감, 열정, 결심/헌신 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친밀감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가깝고 연결되어 있으며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일컫고 열정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낭만, 신체적 매력, 성적인 몰입과 같은 것들로 이끄는 욕망을 말한다. 많은 관계에서 성적 욕구가 열정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지만, 다른 요구들, 즉 자아존중감, 타인과의 친화, 타인에 대한 지배, 타인에 대한 복종, 자아실현 같은 욕구들이 열정이라는 경험에 기여하기도 한다. 마지막 결심과 헌신은 두 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단기적인 것이고, 둘째는 장기적인 것이다. 단기적인 것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로 하는 결심을 말한다. 장기적인 것은 그 사랑을 지속시키겠다는 헌신을 말한다. 사랑의 결심/헌신의 두 측면은 함께 갈 필요는 없다. 사랑을 하겠다는 결심이 그 사랑에 대한 헌신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사랑에 대한 헌신이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내포할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또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과의 사랑에 헌신한다. 그러나 헌신 이전에 사랑에 대한 결심을 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은 연인이나 친구 관계, 배우자 관계 등에서 관계의 구성원들이 서로가 가진 사랑의 감정의 균형 상태를 확인하고 행동을 수정해 나가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관계에서 나의 감정의 강도나 형태와 상대가 가진 감정의 강도나 형태가 언제나 동일하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자신이 인지하는 삼각형과 상대방이 인지하는 삼각형의 형태를 비교하고 어떤 유형의 불일치가 일어나는지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 [triangular theory of love]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한국심리학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다 위 내용을 보고 참 나의 사랑은 불균형한 삼각형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열정에만 치우친 부담스러운 사랑일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탓도 해 본다. 모든 남자와 여자 주인공은 너무나 정삼각형 모양의 사랑을 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그럴 수 있나? 그들을 따라가려 하면 어김없이 찌그러져 버리고 마는 나의 삼각형. 자크가 세 여자를 향한 자아실현형 사랑을 한결같이 행한 것은 과연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정말 악마와 거래라도 해야 그런 사랑을 죽을 때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자크와 대조적인 인물인 로랑스가 한 사랑은 한때의 낭만이나 성적인 욕망이며 너무 아름다워 꺾어서 보다가 이내 시들면 던져버릴 그런 사랑이다. 그것도 모른 채 그에게 달려가는 그녀가 나는 너무 미웠다. 빈센트와 자크의 손을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면 모든 비극이 일어났을까?
내가 조금 더 사랑하고 그들이 나를 조금 덜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까지 불평하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만 할 것인가. 그전에 먼저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유년시절 쓸쓸했던 나를,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기 전 흑백영화 속 살 던 나를. 그 아이들을 충분히 사랑해주고 치유해주면 나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 에서나 나올법한 정삼각형 사랑을 완성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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