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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Sep 14. 2022

기억해줘

나는 소설을 읽을  작가가 주는 힌트로 주인공을 

머릿속에 상상해보고

 주변의 사람들이나 주로 연예인들을 주인공에 맞게 

설정하고 읽어 보곤 한다.

누군가가 이 책을 함께 읽었을 때 내가 설정한 사람들과

함께 읽은 그의 머릿속 이미지와 들어맞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거의 네 시간 만에 이 책을 다 읽은 듯하다.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책 읽기가 이루어진 것 같아 몰입해 있던 나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가볍고 빠르게 읽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내용들, 책장을 덮자 그때부터 밀려오던 생각들과 지난날 나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나갔다.


어쩌면 사람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운명을 떠안고 살아가는지도 몰라

제일 앞쪽에 쓰여있는 글이다. 나도 그런가 생각해보니 부정할 수 없다. 해인과 안나의 17살 시절처럼 나 또한 몸서리치게 외롭고 텅 빈 그때가 있었다. 안나의 말처럼 ‘인생 전체에 외로움의 총량이 있다면 칠 할은 그 이 년 동안 다 겪은 것’ 같던 그때가 말이다. 안나가 써 놓았던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의 책장 속에 ‘힘내, 이 바보야’처럼 수도 없이 끄적이고 나를 달랬던 그 날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내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부모님의 불행을 어찌할 수 없었던 그 무기력하고 절망의 나날들 동안 때로는 친구에게 집착하고 때로는 캄캄한 동굴 속에 홀로 있어도 보고 실비아 플라스의 시 (여인 나사로)의 한 구절처럼 Dying is an art, like everything else. I do it exceptionally well. -죽는다는 건 다른 것처럼 일종의 예술이지요. 나는 그걸 유별나게 잘해요.- 같은 생각으로 온통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를 애써 떠올리지는 않지만 나의 인생 전반에 그때의 기억들이 작용하는 것 같아 항상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건 맞다. 결혼생활과 아이들을 양육할 때도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는 껌처럼 들러붙어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남편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나 자신을 다 내어 놓고 보여주지 않았고 적당한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누군가는 ‘넌 참 솔직하네’ 하지만 그들이 보는 나도 가면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해인처럼 상처받지 않으려 먼저 선수를 친 겁쟁이인지 최소한의 보호막으로 나를 잃지 않으려 한 것인지. 하긴 둘 다 맞는 것 같다.


해인에게 안나는 마치 신이 인간에게 고난 속 숨 쉴 틈을 주는 것 같은 운명과 같은 사람이다. 마침내 그 틈으로 순을 쉬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사람. 눈부시게 시리고도 아름다운 사람. 이제 사십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그런 감사한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겠지. 이미 남편도 있는데. 그런데 꼭 인간이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내게는 책이, 독서가 안나를 대신해 주고 있지 않은가? 눈치 보지 않고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마음것 고를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럿과 만날 수도 있다. 사람에 비하면 탁월하게 경제적이다. 진즉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더라면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까 싶지만 지금 정말 만족하고 있으니 깨달음을 얻은 나를 칭찬 해본다


 책의 작가는  인터뷰에서 좋은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자의 선한 의지가 느껴지고, 맑고 투명하되 깊이가 있고, 고유한 아름다움이 스민 문체를 가지며, 쉽게 읽히지만 복잡하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단정 짓기 대신 회의(懷疑)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책은  좋은 책이다.

단숨에 읽었지만 며칠 내내 생각에 잠겨있게 했으니.

카프카의 말처럼 한 권 한 권의 책이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가 되어 나를 성장시키고 다독이며 나아가게 해준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들의 이야기를 읽게 해 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할 수 없으니 해인과 안나가 좋아한 그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남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비틀즈(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misunderstanding all you see.

It's getting hard to be someone but it all works out,

it doesn't matter much to me.

눈을 감아버리면 사는 게 참 쉬워지지.

당신이 본 모든 것을 오해하면 말이에요.

 누군가가 되기는 점점 어려워지지만 어떻게든 

되긴 하니까,

아무려면 어때요.


#기억해줘 #임경선 #위즈덤하우스 #독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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