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로 Oct 09. 2019

언어의 명도

당신이 어두워질수록 난 밝아져요.

 

언어의 온도보다 언어의 명도가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감각의 노화를 겪는 고령의 노인들다.
이들은 타인의 언어를 헤아리거나
내뱉은 말이 차가웠을까 뜨거웠을까 논하지 않는다.
아주 단순한 1차원적인 언어에 심정만이 담길 뿐이다.

노인들에게 오는 청각의 노화는 익숙한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창의성을 가져다준다.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도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놀라운 화법을 갖기도 한다.

"할머니! (병원에서) 약, 두 달 치 타 왔어 "
"뭐 타고 왔다고?"

 "아니, 할머니 꺼 혈압 약.. 더 타 왔다고"

" 아이고... 약을 어디다 두고 왔어? 약 어딨어?"

" 집에 있어.”
" 응, 집에 있을게. 어여 갔다 와~"

 노인과의 대화는 언어의 명도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의 청각이 어두워질수록 내 언어의 명도는 밝아진다.
점점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커지고, 간결해진다.
그래야 밸런스가 맞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할머니는 입맛이 없다고 밥에 물을 말며 대뜸

“206호 고기가 참 맛있었는데..” 하신다.
“응? 206호 고기?”

‘206호? 우리 아파트에 206호는 없는데..

1206호인가. 2206호인가.. 아니 근데 그 집 고기를 할머니가 어떻게 드셔 봤지?’
별의별 궁금증이 한 번에 밀려왔다.

“할머니! 206호 고기가 뭐야? 언제 잡쉈어?”

“니가 사 온 거~ 저번에 집에서 맛있게 먹었잖아.”

‘내가 사 왔다? 저번에?’
두뇌를 풀가동하며 할머니와 때 아닌 스무고개를 하다가
갑자기 입이  벌어졌다.

“혹시... 할머니... 이거야?”

뭔가 생각이 난 나는 냉동실 안에서 그 정체를 꺼내보였다. 

할머니가 갑자기 텔레토비의 햇님같이 웃으신다.

“ 응 이거. 이거 맞아. 냉동실에 있었네?”

그건 바로 이베리코 삼겹살이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
TV, 어딜 틀어도 올림픽 중계가 한 창 일 때.
할머니는 KBS1 '6시 내고향'이나 자주 보시던 일일 연속극이 나오지 않자

리모컨을 탁 내려놓으시며 흥미 없는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대셨다.
그러다 금세 평창 올림픽 개막식의 화려한 영상에

눈을 꿈뻑이며 묻는다.


“어이구~~ 저게 모야?”


TV 속에서는 새하얀 스키장 위에 띄운

1218대의 드론들이 평창 마스코트인 수호랑

올림픽 오륜기를 만들어내며 감동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멋지다..' 

할머니를 따라 한 참 넋 놓고 보다가

이런 기술과 감각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자긍 가슴이 클해졌다.


“응... 할머니.. 저거 다 드론이야”

뭉클함을 느낀 내 언성이 차분하고 다정하다.


“뭐어? 저게 다 두루미야?”


"ㅠㅠ......두루미....두루미아니야."


 아재들의 말장난은  알고 치는 언어 유희라

 헐, 뜨악 같이 어이없는 표정 나왔는데

 할머니의 언어는 순수하고 진지해서

  준비 안된 표정으로 심장을 부여잡는다.

 


작가의 이전글 동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