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빵차장 #9] 사람관계는 쓰임새가 결정한다.
1. 나는 쓰임새가 없구나..
두달쯤 전이다. 친하게 지내는 A에게 먼저 연락을 안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고? 간단하다. 만나자고 말했는데 두번 까였다. '밥 한번 먹어요.'라고 말했다가 까이고, 다음에는 '커피 한 잔 해요.'라고 말했다가 또 까였다.
그래서, 이제 먼저 연락하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다. 일종의 배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크한 서운함이 내 마음을 감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1주일 뒤쯤 A가 선톡을 해서 말을 걸었다.
- A : 스벅 여름 프리퀀시 랜턴 받았어요?
- 나 : (밝게) 그럼요. 민트 민트한 생상으로 받았어요.
- A : 쿨러도 받았다고 했지요?
- 나 : 핑크 핑크로 받았지요 ㅎㅎㅎ
- A : 부럽다. 모든 걸 다 가졌네..
- 나 : ㅋㅋㅋ
- A :...
밥을 한번 먹자거나, 커피 한잔 하자거나 하는 말도 없이 그냥 대화 끝이다. 평소에 이런 식 대화는 없었다.
그녀는 내가 먼저 밥 또는 커피 하자가 말하기를 기다린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그런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말을 안했다. 당신이 먼저 하느냐, 내가 먼저 하느냐.. 한번 테스트해 봤다. 그 테스트 결과는 그냥 대화 종료...
너무 너무 서운했다. 흑 흑 흑 흑 흑... 보통 이번에 약속이 어려운 경우, 다음번 가능한 날짜를 정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예의상 멘트도 없었다. 아... 아... 그 순간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에게 쓰임새가 없구나!
A와의 관계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해봤다. 도대체 사람과 사람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1) 쓰임새
2) 호감
맞다. 이 두가지 중의 하나만 있어도 사람 관계는 유지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쓰임새'는 회사 같은 공적인 관계에서 필요하고, '호감'은 개인 관계에서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만약 개인 관계에서도 '쓰임새'가 관계 유지의 핵심이라면, 내가 세상을 너무 이기적으로 보는 것일까?
나와 A와의 관계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와 A는 공적인 관계는 아니니까 '호감'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커피 타임 또는 그냥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A가 먼저 커피 또는 밥 타임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호감은 있지만, 선톡할만큼의 쓰임새는 없다는 의미 아닐까?
그러니, 먼저 제안을 하는 일도 없고, 내 제안에 '다음에요.'라는 미루기 스킬을 사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정리한 '사람 관계 Matrix'에 따르면, '쓰임새'가 없는 사람에게는 먼저 선톡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즉, 상대방이 제안하면, 상황이 되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다음에요.'라는 스킬을 사용한다. 물론 '호감'을 갖고 있으니까 이 정도라도 받아주는 것이긴 하지만...
A와의 관계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A에게 쓰임새가 높지 않은 존재라는 건 확실한데 말이다.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생각을 말하니, 그들은 말한다. 아주 심플하게..
- 뭘 그런 것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니?
- 그냥 만나야할 일이 생기면 연락하고, 연락했는데 반응이 싸하면 연락 안하면 되고...
- 사람 관계가 다 그런거지.
맞다. 사람 관계는 원래 다 그런거다. 특히, 강심장을 갖춘 그들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 속 소심이는 그렇게 못하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내 마음 소심이는 그가 A에게 '쓰임새'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싫은 것이다. 너무 너무 너무 속상하니까.
그래서, 살짝 타로 리딩도 해 봤다. 해석을 해보면 이렇다.
- 첫번째 카드, 과거에 마음이 통해서 호감도가 생겼다.
- 두번째 카드, 현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 세번째 카다, 마법사처럼 쓰임새가 있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음하하하하. 타로카드마저 쓰임새를 얘기하다니... 그런데, '쓰임새'없는 사람이 갑자기 쓰임새를 얻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공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씁쓸하다. 사람 관계가 '쓰임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에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A에게 쓰임새 없는 나는 여기까지인 셈이다. ㅠㅠ
빵 먹고 내 마음 속 소심이를 토닥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