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빵차장 #7] 범생이 콤플렉스를 깨고 내 빵세계를 넓히다.
[3줄 요약]
ㅇ 내 고민과 욕망 : 내 빵세계 (빵CU)를 넓히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때 H가 그의 빵세계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이렇게 그의 빵세계를 만나기 전, 나는 범생이 직딩이었다. 이제 그냥 범생이 아재로 살다 죽기는 죽어도 싫다. 난 그렇게 환생했다.
ㅇ 오늘의 빵 : 포비, 어니언 안국, 부트카페
"하이~~ H, 오늘 모닝 플랫화이트와 베이글 어때요?"
비오는 금요일이다. 부드러우면서 깊은 맛의 커피를 먹고 싶었다. 그리고, 고소한 향기 나는 갓구운 베이글도 먹고 싶었다. 그래서, H에게 톡했다.
H는 항상 가던 '포비'에서 만나자고 한다. 포비는 커피와 베이글 맛이 환타스틱하지만, 비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고 앉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다. 투명한 창 밖에 그린그린한 풀들과 나무가 하늘색 빗물에 적어있고, 나는 플랫화이트의 찐한 브라운색에 젖어 있다.
아~~~!
직딩 세계가 아닌, 동화 속 세계라고나 할까.
이렇게 포비의 플랫화이트 9oz와 베이글로 시작하는 하루는 너무 고소하다. ㅎㅎㅎ H는 다음에는 서촌의 부트카페를 가보자고 말한다. 프랑스 빠리지앵 느낌이란다. 빠리 카페 투어 리스트에 있는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봤다고 하면서, 갬성 죽인다고 말한다.
"좋아요.. 가요.. 부트카페!!!"
5년 전 OO부서에 내가 새로 이동했을 때 H를 알게 되었다. 물론 7년전쯤 한번 업무상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엇다. 그 시절 내 업무는 인사업무였고, 나는 직원분들의 솔직한 마음을 알기 위해 인터뷰를 했는데, H가 랜덤으로 그 대상으로 뽑혀서 30분 정도 얘기를 나눴었다. 개인적인 인연보다는 100% 업무적인 인연이었다.
그런데, 내가 OO부서로 이동하고 H를 처음 본 날, H는 밝게 웃으며 아는 척을 해줬다.
"차장님, 그동안 잘 계셨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ㅎㅎㅎ"
너무 고마웠다. 그 부서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잔뜩 긴장한 채로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밝게 말을 걸어주니 천사 중의 천사를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H와 더 친해지고 싶어졌다. 그러나, 회사란 곳은 업무상 관계가 없으면 인간적으로도 친해지기도 힘든 곳이다. 그런데, H와 내 부서는 업무상 관련이 거의 없다고나 할까... 흑. 흑. 흑... 그리고 어설픈 소심한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점심 먹자고 하기에도 너무 생뚱맞았다.
그렇게 3개월여가 흐른 어느 날, 점심 시간이 다 된 타임에 우리 팀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다들 휴가 또는 외부 미팅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 그때 H와 팀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데, H와 눈이 마주쳤다. H가 점심 안 먹냐고 손으로 신호를 보낸다.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어떻게할까 고민이라고 했더니, 같이 먹으러 가잖다. 아~~ 역시 H는 구세주시다. 나는 H와 그 팀원 점심 멤버에 철썩 달라붙었다 ㅋㅋㅋ
H가 선택한 점심 장소는 안국역 근처 식당이고, 밥을 먹고 신상 핫한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며 서둘러 갔다. 바로 그곳은 '어니언 안국'. "우와~~~~" 나는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카페라고는 스벅과 이디야 밖에 모르고, 베이커리라고 하면 파바와 동네 빵집 밖에 모르는 나에게 '어니언 안국'은 파라다이스였다. 이렇게 이쁘고 맛난 빵들이 많고, 이렇게 큰 한옥 건물이라니...
나는 앙버터스콘을 골랐다. 내 최애 빵은 앙버터니까... 먹고 싶은 빵이 너무 많았다. 점심을 방금 먹었음에도 칠리 소시지빵이 왜그리 맛나게 보이는지 ㅎㅎ. 그리고, 팡도르라고 하는 눈덮인 히말라야산처럼 생긴 빵도 처음 많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딸기바라기라는 크림빵도 있었다. 다 먹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구조가 ㅁ자로 한옥 건물이 있고, 가운데 정말 넓은 중앙정원이 있다. 이 중정 때문에 너무 마음이 편안했다. 그 중정에서 기와집 너머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마음 속에서 꺼멓게 쌓여있던 회사 응어리들이 싹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 날 나는 알았다. H를 따라 다니면, 이런 핫한 곳을 가볼 수 있겠구나라는...
맛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어니언 안국'에 앉아 있는데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냐고? 직당 점심시간 종료 시간인 1시가 거의 다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문이 밀려서 커피와 빵은 이제 막 나왔다. H는 어떻게 하려는 걸까? 내 심장은 콩알만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12시 55분... H는 그제서야 말한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휴우... 그러나, 여기서 사무실은 걸어서 10~15분이 걸린다. 나는 사무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을 윗사람들 얼굴이 생각났다. 불안불안불안~~ 드디어 사무실 도착하니 1시 10분, 사람들은 일하고 있다. 난 H에게 조급한 마음으로 점심 즐거웠다고 말하고, 슬라이드하듯이 쓰윽 티 안나게 의자에 앉았다. 휴... 휴...
그런데, 이상하다. 점심시간에 10분 늦게 들어왔다고 아무 일도 안 생긴다. 이런 진리를 회사 생활 20년만에 깨닫다니... 크하하하하. 살다보면 한두번은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9시 전에 출근하고 6시 넘어서 퇴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점심시간 5분, 10분 늦는 것은 안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는가?
그런거였다. 세상은 상황에 따라 플렉서블한 세계인데, 나 혼자 스스로 1시라는 시간 안에 나를 가둬두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의미없는 시간 기준을 안 지키는 다른 사람을 기본기 없고 예의 없는 인간이라고 판단하는 범생이 꼰대 마인드 말이다. 이런 내 범생이 꼰대 마인드를 H 덕택에 깨트려 볼 수 있었다.
우주선을 타고 완전히 다른 오렌지색 태양계를 만난 느낌이었다. 나는 1시간 전까지 여기를 벗어나면 큰 일 난다고 생각했던 지구인이었고, 지금은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우주인이다.
빵친구 H 덕분에 나는 또다른 빵CU를 만났다. 그 덕분에 옹졸한 범생이 세계를 깨고 나올 수 있었다. 그깟 Hip한 곳에서 빵 먹고, 점심 시간 조금 어기는 것이 무슨 큰 일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깨트리고 나와야 다른 세상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옆에 있어도 내 마음 속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그 세상을 느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서촌에 핫한 신상 <부트카페>에 간다. 짧은 점심시간이나마 빠리지앵으로 변신해서 파리를 만나고 싶다. 오렌지빛 햇살이 눈부신 낭만과 여유와 즐거움이 넘쳐나는 그런 세상 말이다. 물론 빵친구 H와 함께 간다.
문득 작년 유행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그 대사가 생각난다.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잖아요.
우리는 (즐겁게) 살기 위해 일해요.
~
당신들 미국인들은 행복이 뭔지도 모르잖아요.
고마워요,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