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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댄서 Sep 10. 2023

1등 노예와 가스라이팅

[점심을 먹으며 뻔뻔함을 충전합니다.]

[3줄 요약] ㅇ ㅇ ㅇ


1.


"정 과장, 오늘 점심 같이 어떤가?"

팀장이 물어본다. 선약을 취소하고 팀장하고 점심을 같이해야 하나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후두두둑 털어버렸다. 내 선약이 중요하지 팀장의 제안은 하나도 안 중요하니까 말이야.


오늘 점심은 혼자 서촌에 가기로 생각했었다. 늦여름의 서촌에 가서 황금빛 가을 햇살에 멍 때리고 싶었거든. 여하튼, 팀장의 제안을 깔끔하게 뒤로 하고 나는 서촌으로 출발했어.


오늘의 목표지는 '카페 도틀'이란 1인 사장님이 하시는 작은 한옥 카페다. 혼자 가서 멍 때리기 좋은 카페를 찾고 있는데, 한옥이고 분위기가 좋아 보였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가 1번 손님이었어. 그래서, 약간 긴장했지만, 가장 좋은 자리라 불리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


커피도 맛있다. 사진도 잘 나온다. ㅎㅎㅎ



2.


그 때, 팀 후배 얘기가 떠올랐다. 며칠 전에 팀장이 그 후배에게 퇴근 무렵 저녁을 먹자고 했나봐. 맛있는 돈가스집이 있다면서. 후배는 배도 고프고 해서 거절하지 않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데.


돈가스는 정말 맛있었데. 아사사삭 크런치 느낌의 튀김과 부드럽게 아자자작 씹히는 고기가 환타스틱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돈가스와 함께 진행된 팀장과의 대화 얘기를 하더라고.

"김 대리가 요즘 일이 많은 거 알아. 그래도, 나는 김 대기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해."
"네..."
"김 대리가 지금은 힘들어도 지금 경험이 크게 도움될 꺼야.
  나중에 과장 승진하고 하면 이런 경험이 내 실력이거든"
"아.. 네..."
"앞으로 A프로젝트도 잘해줬으면 좋겠어."

같이 듣던 있던 동료들이 동시에 외쳤다.

"가스라이팅이다!!! 돈가스 가스라이팅.. 돈가스라이팅 ㅎㅎㅎ"

그 후배도 가스라이팅인 줄 알았지만, 돈가스 너무 맛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더라고.

"난 아무래도 1등 노예인가봐."

자기는 불평은 많아도 일을 많이 한다는 노예 중의 최상급 노예인 '1등 노예'라는 의미라고 하네. 신조어인지, 즉석에서 지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3.


왜 팀장들은 우리를 가스라이팅하려고 할까?

그냥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얘기하면 되는데, 꼭 앞에 말을 붙인단 말이다.

"김 대리가 이 일을 맡으니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 같아. B프로젝트도 부탁할께."
(속마음 : 김 대리가 B프로젝트도 맡아줘. 그래야 내가 신경 덜 써도 일이 잘될테니까.)
"김 대리, 이 일만 마치면 조금 여유가 생길 테니, 조금만 더 해보자고."
(속마음 : 김 대리, 이 일 마치면 또 시킬 일 있으니까 빨리 끝내자고.)
"김 대리, 여기가 돈가스 맛집이야. 맛있게 먹자고."
(속마음 : 여기 돈가스 먹으면 불만이 좀 줄어들겠지.)
"김 대리, 과장 승진하려면, 일찍 출근해서 미리 업무 준비도 하고 그러면 좋아."
(속마음 : 지금처럼 출근 시간 딱 맞춰서 오는 거 난 불만이야.)

그들이 이런 가스라이팅 말버릇을 어디서 배웠고,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그들은 아마도 쌍팔년도 시절 자기 선배들에게 이런 가스라이팅 말버릇을 배웠을 거야. 쌍팔년도 우리나라 회사 문화는 그런 문화였으니까 말이지. 회사 일이 무조건 최우선인 꼰대 문화 말이야.


그리고, 명령하고 지사만 하는 꼰대 팀장 모습이 아닌 척하고 싶어하는 거야. 팀원을 격려하고 동기부여하는 멋진 팀장처럼 보이고 싶은 거야. 그러면서, 앞에 가스라이팅 말을 언제나 덧붙이는 거지.




4.


그날 이후로 우리 팀원들끼리는 '돈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사용해. 돈가스가 먹고 싶어지면, '우리 돈가스라이팅 당하러 가지 않을래?' 이런 식으로 말하거든. ㅋㅋㅋ


그리고는, 자기가 최고 '1동 노예'라고 서로 싸우기도 해. 웃으면서 ㅋㅋㅋ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황선우, 김혼비 작가님의 책 제목이 생각났어. 후배들에게 이 책 애기를 해줄까 하다가 말았어. 왜냐하면, 이런 것도 '충조평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난 꼰대되기는 싫으니까...


*충조평한 : 충고/조언/평가/판단의 약자로 요즘은 이 4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말을 하면 안된다고 한다. 단, 상대방이 요청할 때만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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