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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Oct 13. 2022

04. 화나 갈 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면 좋을까?

04. 화가 날 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면 좋을까?       



   모모별 에세이



 아빠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추석 연휴였다. 아빠는 아침 일찍 산소 갈 때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있었다. 엄마는 음식과 그릇 정리를 하고 언니와 나도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출발했다.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지가 있는 곳. 어렸을 때 산소 근처에 있는 옥수수밭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주 오곤 했다.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거의 매일 오갔다. 다행히 비가 안 오고 날씨도 선선했다. 푸른 소나무 길을 지나,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를 보며 산소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음식을 꺼내다 보니 돗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아무도 돗자리를 챙기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빠는 차 근처에 놓아두었고 따로 이야기하진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챙기겠지 생각한 것이다. 결국, 누구도 돗자리를 챙긴 사람은 없었다. 아빠는 그거 하나 못 챙겼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감정을 억눌렀을 텐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화가 올라오는 감정을 느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아빠에 대한 억눌린 감정이 그 순간,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챙기라고 말을 하면 챙겼죠. 못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빠는 내가 말대꾸하자 더 크게 화를 냈다. 내 목소리도 더 높아져 갔다. 끝내 숨기고 싶었던 속 얘기까지 내뱉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무서워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못 했어요. 사회 생활할 때도 혼날 행동 하지도 않았는데 혼날까 봐 눈치 보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아빠는 화를 더 내려다 말았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감정적으로 치닫기 쉽다. 아예 꾹 억누르고 참거나, 감정을 회피하며 자리를 피하거나,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모두 괜찮은 방식은 아니다. 나 자신과 상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화가 날 때, 지혜롭게 감정을 다루며 대화하는 방법은 뭘까?     


 누군가에게 화나는 상황이 있다면 다짜고짜 화를 쏟아낼 것이 아니라 화가 난 감정부터 알아차려 본다.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한 템포 쉬어가는 거다. 이때 심호흡을 크게 세 번 정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 진정된다. 억누르는 것이 아닌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다. 감정을 인정해주면 마음이 가라앉으며 더 적절한 단어를 고르게 된다.      


 감정에 대한 강의와 책을 접하며 화가 난다고 무작정 분출하는 것이 건강한 표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빠에게 화를 낼 때 화가 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단계까지 가진 못했다. 차분해진 후에 이야기했다면 아마 다르게 표현했을 거다.     


 “아빠, 아침 일찍부터 물건 챙기느라 고생하셨어요. 돗자리 챙기라고 차 옆에 두었는데 그걸 못 봤네요. 꼭 필요한 건데 못 챙겨서 속상해요. 챙기라고 이야기해주시면 챙겼을 텐데 다음부턴 이야기해줘요. 잘 챙길게요. 오빠가 운전해서 오고 있으니 가져오라고 얘기해볼게요.” 이렇게 말이다. 실제로 오빠가 다시 가서 금방 챙겨왔다.      


 이렇게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는데 나는 왜 그렇게 화를 낸 걸까? 대상에 대한 억눌린 감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작은 일에도 화를 버럭 내곤 했다. 고민이 있어도 부모님께 잘 털어놓지 못했다. 상처받는 상황이 많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아빠의 어린 시절과 상황을 오롯이 이해하게 되면서 서툴지만, 감정을 표현하게 됐다. 화내고 나서 후회했지만 성숙한 표현을 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는 매끄럽게 이어지는 대화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어려운 이유가 뭘까?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가 되살아나면서 아빠의 말을 비난과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억누르고 참았던 감정이 비슷한 상황이 오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풀어갈 게 많다. 처음에는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 표현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왠지 낯간지럽고 꼭 말을 해야 아나 싶고. 어색한 게 싫어서 상황을 피해버린다. 만약 쌓인 게 있는 관계라면 감정표현 이전에 깊숙한 곳에 있는 상처받은 내면부터 치유해주면 도움이 된다. 몇 번이고 불쑥불쑥 올라오는 서럽고 두려웠던 마음을 느끼고 안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날 같이 식사하면서 아빠에게 어렵지만 먼저 말을 건넸다. 

 “아빠, 화내고 소리쳐서 죄송해요. 아빠한테 고마운 게 더 많아요. 아빠 많이 사랑해요. 알죠?” 아빠도 미안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빠도 미안하다. 자, 한바탕하고 먹으니 음식이 더 맛있네. 먹자.”


 이렇게 표현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다. 호랑이 버금가게 무서운 게 아빠였기에 마음이 많이 닫혀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에 참 감사하다. 오랜 시간 내 안의 감정을 만나 풀어주기를 거듭 반복해온 여정 덕분이다.      


 한 걸음씩 나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삶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여전히 어떤 관계는 풀어가기 어렵다고 느끼지 이 또한 배움이고 과정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순간순간 마음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평온한 마음을 만드는 감정 탐구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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