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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Oct 14. 2022

05.설레는 순간은 어디에나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05. 설레는 순간은 어디에나 있다

_일상을 여행처럼     



 비행기가 엄청난 속도로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기체가 흔들리며 곧 붕 하고 떠올랐다. 누군가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설명해준다고 해도 이렇게 무거운 물체가 구름 위까지 떠올라 난다는 것이 대단하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최초에 비행기를 떠올린 사람이 있다. 모든 물건은 누군가의 상상으로부터 나온다. 자동차, TV, 사진기, 휴대폰 등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물건들이지만 최초에 생각해 내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느껴지는 아찔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흥분된 마음으로 지상과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살펴봤다. 새는 항상 이런 풍경을 보는 걸까. 그것도 자유롭게 바람을 느끼면서. 인간도 먼 과거에는 천사처럼 날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만약 내게 날개가 있다면 자동차나 비행기가 있어도 매일 날아다녔을 것 같다.      


 운 좋게 창가 쪽에 앉았다. 여자 두 분이 옆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어 나는 최대한 뒤로 밀착하며 흘끔거리며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가끔 앞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우와. 구름이 가까이 있어. 우와. 바다다.”하고 감탄할 때 빙긋 미소가 지어졌다. 감탄하면 기분이 좋다. 어른이 되어 감탄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낀다. 맑고 푸른 하늘을 볼 때, 오색빛깔 물든 나무들을 볼 때,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를 볼 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 아무 생각 없이 감탄하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니 잠든 사람들이 많았다. ‘이 풍경을 보지 않고 잠을 잔다고?’ 생각하다가 자주 비행기를 타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바다 마을에 살면서 바다를 몇십 년간 봐온 나는 매일 바다를 봐도 질리지 않았다. 비행기를 탈 때도 그럴 것 같았다. 장시간 비행을 하면 모르겠지만. 구름이 비행기 밑으로 깔리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다의 출렁임이 슬로우 영상처럼 움직였다. ‘제주에 가면 돌고래도 볼 수 있을까?’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설레는 마음을 품어본다.      


 제주는 고등학생 수학여행 때 첫 방문 이후로 두 번째다. 비행기에 대한 추억은 좋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탑승했는데 착륙할 때 기압 차로 중이염에 걸리고 만 것이다. 통증이 너무나 심했고 선생님과 함께 제주도 병원에 가게 됐다. 작은 병원이었는데 의사가 말했다. “고막이 청공 되셨습니다.” 청공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고막이 터졌다고 말했다. “네?”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울먹였다. 내가 울며 소식을 전하자 친구들도 같이 울었다. 선생님과 좀 더 큰 병원에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누가 그렇게 말했냐며 중이염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아픈 건 마찬가지였지만 병명이 달라지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아픈 귀를 부여잡고 병원에 다녔던 기억, 시골 버스를 타고 본 바깥 풍경이 전부다. 하지만 선생님과 함께 버스 안에서 바라본 제주의 풍경은 정감 가고 예뻤다. 다시 제주에 와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그사이 10년이 지났다.


 제주는 1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혹시 또 착륙할 때 귀가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하품하면 풀리는 정도의 가벼운 압력만 느꼈다. 성대결절 치유를 위해 열흘간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꼭 필요할 때는 제외하고는. 소통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다. 목소리를 잃고 두 다리를 얻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인어공주의 마음이 가늠되지 않는다. 말은 중요한 표현 수단 중 하나인데 불편함을 겪자 새삼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숙소에 오면서 길 찾는 아주머니, 아저씨를 만났다. 목이 아팠지만 두리번거리며 애타게 찾는 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길을 알려드리며 지도 앱을 휴대폰에 깔아드리고 이용하는 법을 알려드렸다.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환경도, 사람도, 일도 너무 빨리, 쉽게 익숙해져 버리는 것 같다. 하루하루 변하는 나와 누군가를, 누군가에게는 여행지가 될 이곳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매일 맞이하는 아침을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미소를 머금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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