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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Oct 17. 2022

06. 나는 나의 수호천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06. 나는 나의 수호천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제주 애월 숙소에 도착했다.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1층과 2층 양옆으로 방이 나란히 있다. 2층 숙소였기에 무거운 캐리어를 간신히 들고 계단을 올랐다. 한 면은 짙은 나무색, 절반은 흰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리 아래로는 짙은 붉은색 벽돌 무늬가 새겨진 아담한 공간이다. 화장실에 욕조도 있고 폭신해 보이는 침대가 보인다. 둥근 나무 테이블 양옆으로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글 작업을 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라 생각했다.     


 창은 옆 나무 벽 쪽에 하나, 대각선 나무 벽 쪽에 하나, 베란다에 너른 창이 보인다. 안타깝게도 창이 고장 나서 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아쉽지만 다른 창이 많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베란다 창으로 애월 바다가 보인다. 서해안 쪽이라 저녁이면 바다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트는 모습은 동해에서 자주 봤는데 서쪽 애월 바다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어쩐지 바다로 해가 지는 모습 보고 있으면 애틋한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짐 정리를 하고 근처 편의점에 물과 간식을 사러 갔다. 가는 길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갈색 털을 휘날리며 꼬리를 살랑이는 리트리버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리트리버는 주인의 보폭에 맞추어 편안한 표정으로 느릿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강아지를 웃으며 바라보다 할아버지를 보니 할아버지의 표정도 밝았다. 할아버지는 산책하며 강아지를 예뻐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많이 보았겠다 생각했다. 말하지 않아도 할아버지와 리트리버 사이에 두터운 정이 느껴졌다.      


 숙소에 거의 도착할 때쯤 엄마와 딸, 엄마의 어머니로 보이는 가족이 산책하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멈춰섰다. 아이의 엄마는 웃으며 “인사해야지.” 했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계속 뚫어지게 나를 쳐다봤다. “인사해줘야지” 엄마가 한 번 더 말했다. 아이는 그제야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안녕” 가족의 뒷모습을 보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소중한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외로움이 컸던 시기에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주길 바랐다. 상대의 애정이 식어가는 걸 느끼면 불안하고 두려워했다. 깊어지는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하려고 먼저 거리를 두기도 했다.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을 하고 싶었지만, 맘처럼 되지 않고 오히려 희생만 하다 건강을 잃은 적도 있다. 내 마음에 난 구멍은 쳐다보지 않고 누군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기 급급했다. 그것이 사랑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가장 먼저 지켜주고 아껴주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있어 지켜주고 싶어도 스스로 건강해야 보듬을 수 있다. 비행기 사고 시 안전 장비 착용 안내를 들은 적 있다. 호흡기가 내려오면 엄마 먼저 착용하고 아이에게 착용시키라는 내용이다. 그것이 아이를 지키는 방법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서도 나를 아껴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천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를 돌보고 믿어주고 아끼는 평온한 시간을 늘려가다 보면 자기 안에 쉼 없이 솟아오르는 무한한 사랑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발견하게 된다. 그 자리에 늘 있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겹겹이 쌓인 먼지 속에 잠시 보이지 않았던 보드라운 바람 속에 담긴 애정. 누구에게나 있는 사랑의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가다 보면 대가 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거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쏟는 시간이야말로 유일하게 낭비되지 않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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