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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Jul 13. 2023

사랑의 5단계

이별 그 후 

 이별후유증에 대한 글을 쓰고 나름 이일저일 바쁘게 지내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취미활동도 하며 잊어보려 애썼지만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기를 지나자마 또다시 연락을 하고 말았다.


 바쁘게 지내라, 관련된 사진을 지워라, 물건을 버려라, 자기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어라 등등

모두 헛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별이냐에 따라 이 방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 어떤 사람의 방식도 통하지 않았다.


 그걸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별에는 다섯 단계를 거치며 회복이 된다고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놀랍게도 나는 헤어지고 근 6개월가량 대부분 '부정'에 머물러 있었다.

헤어졌다 만났다를 해왔기 때문인지 이번 이별을 이별이라고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음이 식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끝이구나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음이 식었다는데 그럼 끝난 거지.

사정상 멀리 떨어진 상황이라 메시지로 이별 맞이했기에 완전한 끝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뒤로 마음 아파하며 울었지만 그만큼 빨리 회복하려고 애썼다.

2개월 뒤에 결국 먼저 연락을 했다.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는 실망감이 올라왔다.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며 기다렸구나. 바보같이. 스스로 한심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상대방은 내 생각해서 산 선물을 주었고 내가 해준 목도리도 하고 다녔다고 말하며 늦었으니 머물다 가라며 

여지를 주는 듯한 말을 했다.

마음은 같이 있고 싶었지만 꾹 참고 애써 담담한 척하며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답답하고 가슴이 조여 오고 그 뒤로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간 억눌러놓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음에 대한 탐구를 하다 보면 알 수 있듯 이 감정은 본래 내 안에 있던 감정이다.

상대방 때문이라고 탓하기 쉽지만 사실은 내 안에 있던 감정을 이 사람이 끌어내준 것이다.

하지만 막상 머리로는 알면서도 감정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무너지듯이 느껴진다.

이럴 때 바쁘게 일을 하면 도움이 된다. 

상대방은 바쁜 시기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감정 정리를 일찍 마쳤는지도 모른다. 바빠서 연애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금방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고 쉽게 나를 잊었다고 생각하니 밉고 화도 났다. 이 미움이란 감정은 가장 나중에서야 올라왔다. 


 나도 나름 바쁘게 보내면서 잊어보려 노력했다. 그게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인 줄은 몰랐다.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책을 읽고 예쁜 풍경을 보며 그 사람을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당일 갑자기 미친 듯이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번개가 3초에 한 번씩 하늘에 셔터를 누르듯 터져 나왔다.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광란의 날씨처럼 내 마음도 혼란스러워졌다. 

연락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전혀 이별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떤 희망과 가능성을 붙잡으며 지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천둥번개를 핑계 삼아 연락을 했고 답이 왔지만 무뚝뚝했다.

다음날 만나는 것이나 전화는 어렵다는 답장에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너무 두렵고 떨렸다. 

진심을 담아서 다시 만나보자는 내용이었다. 답장이 왔다.

미안하고 고맙지만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대답이었다. 좋은 인연 만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여있었다.

나도 끝까지 예의 있게 답장을 보냈다. 잘 지내라고 마음은 아프지만 축하한다고. 도대체 축하한다는 말은 왜 한 걸까. 나는 내 마음에 전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진짜 이별이 시작됐다. 오랜 부정을 거쳐 드디어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빠서 연애할 때가 아니라더니 그 사이 만나는 사람이 생겼나,

그러면서 머물다 가란 말은 왜 한 거고 선물은 왜 줬냐, 처음부터 날 만난 의도부터 그냥 모든 게 다 화가 났다.

나를 버린 그 사람이 너무 미웠다. 미움을 받아들여주었다. 

버림받은 내가 너무 수치스러웠다. 수치스러운 마음을 받아들여주었다.

상대를 버렸던 순간이 떠올라 죄책감이 올라오고 이런 내가 너무 미웠다. 

죄책감과 나를 미워하는 마음도 받아들여주었다.

폭풍 같은 시간을 겪으며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타협'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울을 지나 수용의 단계인지도 모르지만

이미 한 번 완전히 수용했다 착각했던 적이 있어서 섣부르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별을 선택한 그 사람의 자유를 인정했다. 

나도 누군가를 거절한 적이 있듯이 그 사람도 누군가를 거절할 수 있다.

나도 누군가를 만나며 마음이 변한 적이 있듯이 그 사람도 변할 수 있다.

헤어지고 누군가를 만난 것은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왜 그렇게 좋았던 기억만 무한반복되어 떠오르는지,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내 안에 아픔들을 만나면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의존하는 마음도 있었고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를 만났다.

비슷한 이별을 경험한 원인은 내 안에 있었던 거다.

내 안에 버림받아서 아파하는 아이를 만나라고 

이제는 마주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인연이었다. 


홀로서기를 이제야 시작한다. 그것도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아직도 그리운 마음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연락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다.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지, 그때의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건지.

정말로 안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거짓말처럼 지나간다. 

진한 그리움이 찾아오는 날들이 또 있겠지만 수용해 주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보수가 필요하듯 다친 마음들을 치유해 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했던 순간은 정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사람이 웃으면 나도 너무 행복했다.

이제는 그런 행동들을 나 자신에게 해주고 있다. 천천히, 하나씩.


지나치게 집착하면 상대도 부담을 느끼고 멀어지고 싶어 한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미련이 남아도 탁 놔버릴 줄 알아야 한다. 

놓아버리는 과정에서 온갖 아픔이 올라와도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 뒤, 전보다 성숙해진 자신을 만나게 된다. 


비워져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죽놀이도 끝이 나는 순간이 온다. 

폭죽이 터지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고 수십 수백 번 그 장면을 돌이켜보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다 타오른 불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더는 다시 볼 수 없다.

마음의 사진첩에 간직해 두는 수밖에.

고맙고 밉고 아프고 슬펐던 순간들.

두려워도 용기 냈던 순간들.

버리고 버림받았던 순간들.

매 순간마다 얼마나 노력했고 용기를 냈는지는 나만이 알고 있다.

그 누구도 애쓰라 말한 사람이 없는데 잃을까 봐 겁나서 지키려고 애쓰던 나였다.

덕분에 조금은 자란 것 같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란 말이 있다.

물 흐르듯이 살고 싶다.

새롭게 닉네임을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나류. 

흐르는 물에 내맡기듯이 살아가보자.

어딘가 닿게 되겠지.

결국 아주 넓은 곳에 하나가 되어 만나게 될 거다.


안녕! 모두 평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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