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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Dec 25. 2020

골목의 생명

     

 이 골목 저 골목 걷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골목을 조금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초록 생명이다. 어떻게 싹을 틔워낸 건지 모를 좁은 돌 틈 사이에서 자라난 모습을 보며 그 생명력에 감탄한다. 제법 싱싱한 잎을 자랑하고 허리춤까지 자랄 정도가 되어도 뽑히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경우일까? 은색 철문을 여닫았던 이는 이 친구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을 테다. 어쩌면 그 반대인 무관심이었을 수도 있고. 무엇이든 간에 초록이는 살아남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다.     


 이런 친구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주로 마음에 위로를 느낀다. 내 마음이 힘들 때는 나 역시 그냥 지나치곤 한다.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삶이 아주 바쁘게 돌아갈 때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와 풀들이 주인공인 숲과 다르게 골목에서는 세 들어 사는 신세가 된다. 오래된 집과 콘크리트 도로, 차, 오토바이, 담벼락, 높고 낮은 건물이 주를 이루고 이들은 그 틈을 비집고 애써서 살아내는 존재들 같다.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서울에서 어떻게든 돈을 벌며 방값과 식비, 교통비를 마련하고 살아내는 나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높이 크게 자라나고 싶은데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저도 모르게 한계를 짓는다. 계속해서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뻗어 나가는 골목의 나무가 애잔하다. 

     

 힘이 들수록 좋은 점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던 나였다. 그 시기에 글을 썼으면 골목의 나무를 보며 용기를 느꼈을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내가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쉽게 절망하지 않았다. ‘어떤 위기가 와도 나는 할 수 있어, 극복할 수 있어. 좋은 일이 올 거야. 지금에 감사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고 격려했다. 


 진짜 위기는 예상하지 못할 때 찾아왔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3, 4월에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안에 억눌려온 감정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촛농처럼 흘러내린 것이었다. 마치 댐을 막고 있던 둑이 계속해서 밀려오는 어마 무시한 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듯이.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고 임시로 방편을 마련했다. 어느 정도 상황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거대해지는 코로나를 마주하며 다시금 두려움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이 앞으로 도무지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을 만날 수는 있을까? 지금보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어떻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애써온 활동들을 등에 이고 살아온 나였다. 보호받지 못할까 봐 두렵고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까 봐 걱정된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실은 그 이유를 짐작한다. 그 이유에 나 또한 동조했음을 알기에 물을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았더라면 인류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명심하고 지켜나갔을 거다. 잘린 밑동만 보더라도 제법 거대했을 나무를 상상하며 전선과 닿을 정도로 큰 나무이기 때문에 희생당한 존재는 운이 나쁜 걸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쭉정이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인정받기 위해 살아온 삶을 마침내 깨달은 마음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범벅이 된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살아내야 한다. 한 걸음을 가더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더욱 더딘 걸음이 되겠지. 하지만 가장 빠른 걸음이기도 할 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잘 살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답하기 막막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러한 질문을 이제라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골목의 생명과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행동한다면 다짐한 삶과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화려한 가짜 꽃보다 작지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하는 골목에 핀 꽃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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