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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Dec 23. 2020

사랑하는 나의 계절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다. 야외활동하기 딱 좋은 적당한 온도와 보드라운 바람, 깨끗한 하늘과 시시각각 재밌게 변하는 구름 모양을 보는 재미가 있는 계절이다. 책 한 권 가볍게 들고나와 햇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즐거운 독서삼매경에 빠지고 노트와 펜을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끄적이기에 이만한 때가 없다. 좋은 날에 바깥 활동을 하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고마운 계절이다.      


 비슷한 이유로 봄을 좋아한다. 봄과 가을의 얼굴은 닮은 듯하면서도 성격은 딴판이다. 봄은 점점 더 후덥지근한 단계로 가고 가을은 나날이 기온이 하강하는 과정에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다다를 때면 몸과 마음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밤이 되도록 식지 않는 뜨거운 열기에 수많은 생각이 익어간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서서히 침잠한다. 적막한 기운에 잠겨 묵묵히 뜨거웠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고요한 시간이 좋다.     


 단순히 온도가 주는 쾌적함을 이유 삼아 봄과 가을을 편애하곤 했는데 요즘엔 모든 계절이 좋다. 봄은 봄대로 따듯하고 포근해서 좋다. 언 땅이 녹으면서 온 대지가 깨어난다. 추운 겨울 동안 얼어있던 몸도 맘도 풀어진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산뜻한 바람에 나들이 가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엔 무더위에 지치고 짜증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이 또한 달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운 음식을 즐겨 먹진 않지만, 가끔 땡길 때가 있는 것처럼. 사막을 방불케 하는 태양은 나름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여름에 달궈진 대지는 별이 떠오를 때까지 온도를 유지해 늦게까지 가벼운 차림으로 있을 수 있다. 특히 해가 길어서 좋다. 어쩐지 하루가 더 길어진 느낌이다. 새벽 5시부터 환해지기 시작해서 저녁 8시쯤 돼야 어둑해진다. 가을은 앞서 이야기한 그대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햇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가을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고 있다.     


 겨울은 추위에 약한 내게 그리 반가운 계절은 아니었다. 몸은 움츠러들고 지독한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 바깥 활동을 좋아하는데 추운 날에 돌아다니는 것은 고역이다. 해도 한없이 짧아진다. 눈이 하루 이틀 오는 것은 좋지만 잔뜩 쌓이는 날이면 이동할 때도 불편하고 발도 시리다.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를 보면 마음이 쓸쓸해졌다. 얼른 겨울이 지나가길 바라곤 했다.      


 이랬던 내가 언제부터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치는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방구석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나를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찬 바람이 콧속으로 훅 들어오면 세포 하나하나까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옷을 입고 찬 공기를 마시러 일부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겨울의 공기가 이렇게 신선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활동에만 열중했던 다른 계절과 다르게 겨울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무릎에 담요를 덮고 귤을 까먹으며 보고 싶었던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따듯한 차를 마시며 차분히 글쓰기 좋은 계절이다. 1년의 끝을 달려가면서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점검하기 좋다.      


 문득 모든 계절 속에 있는 나를 그려본다. 꽃밭에 원피스를 입고 나들이를 가는 모습, 동료들과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을 오르고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는 모습, 따사로운 햇살이 이불처럼 덮인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모습, 눈 내리는 날 털모자에 목도리를 하고 떠나는 여행.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계절에 대한 느낌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듯 지금의 나 또한 달라졌다. 성격도, 생각도, 꿈도 조금씩 달라지고 확장되어 간다. 명랑하고 활달했던 초등학생 시절을 거쳐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던 청소년기, 빨간 머리 앤의 영향을 받아 초 긍정적으로 밝게 생활했던 20대 초반의 나, 술을 배우면서 시작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엉망진창 흑역사 등.      


 커가면서 둘리에 나오는 길동이 아저씨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거나, 허구한 날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부모님의 다툼도 전보다 옅어져 가고,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며 괴로움의 동굴로 밀어 넣기를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하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숨 쉬는 것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 종일 배를 잡고 뒹굴뒹굴하며 고통스러워했던 생리통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스무 살에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허황하고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내가 극단에서 배우로 무대에 서고 거리에서 즉흥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10년 우정을 함께 했기에 앞으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인연을 이어갈 것으로 생각했던 친구와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10대 내내 혼전순결을 고집했지만 20대 초반에 장난처럼 깨져버렸다. 상처를 준 누군가를 미워했는데 ‘그 사람만의 사정이 있었겠구나’하고 이해하게 됐다.     


 가치관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가보지 않은 곳을 탐방하며 새로운 나를 만났다. 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할 때마다 키는 이미 다 자랐지만, 내면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세계는 매일 조금씩 넓어지고 다채로워지고 있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하루아침에 변화한 것은 아닐 거다. 변화하는데 특정 시점은 없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활짝 핀 꽃을 보며 놀라지만 꽃은 씨앗 속에서부터 싹을 틔우고 봉우리를 맺으며 오랜 시간 인내하고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운 옷을 다듬고 있었으리라. 어쩌면 우리는 각자가 거쳐야 할 과정을 겪으며 하나씩 깨닫고 알아가며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계절 계절을 사랑한다. 계절 속 어딘가에 있는 나를 사랑한다. 내게 불어오는 바람을 흠뻑 들이마신다. 지금 여기, 이 바람은 내게 다시없을 선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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