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교육열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눈부신 산업화를 이루고 정보화사회를 거쳐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그런데 교육과 상식의 범위 안에서 이해불가능한 일이 버젓이 현재의 우리의 삶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의아하다.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배운다. 새로운 감염병이지만 언론을 통해서든.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서든, 직접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서든, 배운다. 전혀 몰랐던 것에 대한 정보를 축적시키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공부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배움의 길을 만들어 배운다.
그런데 동일한 상황을 배우고 통제하는 방법이 왜 사람마다 다를까. 왜 어떤 이들은 정반대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낼까. 기초적인 상식과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까.
‘기초’와 ‘객관’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합의한 상식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던가. 획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합의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답답하다.
나도 상대도 답답한 일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초적인 상식이라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이 평행선을 어찌해야 할까. 나는 쉽사리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가로지으며 멀어지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는 사이 평행선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버린 것 같다. 다시 갭을 좁히려 하니 이제는 잠시라도 만나는 방법마저도 잊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철학적인 관념과 인도주의적인 신념 때문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다. 이제 세대와 사회의 갈등이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접점 없이 갈라선 평행선의 길이만큼 만나기 위해 달려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그 사이에 갈등과 위기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