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순적인 평화주의자다. 직면하게 된 문제 상황에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흠집 없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그런데 생채기 없이 이뤄지는 변화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안정’은 편안함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문제 상황의 제기와 그에 따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분명 낯섦과 불편함이 일시적이나마 발생하기 마련이다.
흔히들 진보는 단합이 되지 않아 문제가 톡톡 튀어나오고, 보수는 똘똘 뭉친다고 한다. 단순히 정치적인 이야기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새로운 변화는 안정과 조용함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정상적인 진보라면 잘(?) 변화하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고 통합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는다. 그래서 내내 시끌시끌하다. 뭔가가 변화되어 정해진 이후라도 영원한 것은 없다. 또다시 변화를 위한 진통이 시작된다. 그래서 진보는 태생적으로 불안정과 다양함을 안고 있는 개념이다. 반면에 보수는 지키는 것이다. 편안함과 안정을 도모하고, 가급적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여 평화(?)를 만든다. 적어도 수면 위에 드러나 있는 부분은 매우 평화로워 보이도록 노력한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조금 시끄럽더라도 진보를 향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인간사는 복잡하고 저마다 가진 힘과 가치가 다르다. 그러니 지키고자 하는 대상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 시절에조차도 인간에게 절대 분배는 불가능하다 했으니 그 이론에만 존재하는 공산주의같은 이야기는 빼 버린다면, 세상은 진보와 보수로 나뉜다. 뭐가 옳을지 그를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하다 해도 대체 누가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가, 또는 나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의 방향이 왔다 갔다 한다.
우리는 어쩌면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선장 없는 배를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선장이 될 수 있고, 그 누구도 선장이 될 수 없다. 조타기를 잡는 순간 선장이 되지만, 조타기를 놓치는 순간 선장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망망대해를 항해한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과 끊임없는 불안감을 내재하고 있는 이중적인 상태다. 우리 세상은 정해져 있지 않고,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해 당위적인 불안을 가진다. 하지만 가급적 맑게 갠 하늘 아래 어떤 위험도 없이 풍족한 상태로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를 표류하는 신세는 절대 싫지 않은가.
우리 세상은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처럼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오늘 최고였던 조타수가 내일은 최악일 수 있고, 오늘 최고였던 가치가 내일은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변화는 필연이고, 얼마나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변화에 대응하며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느냐가 보수의 힘일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요동치는 바다 위에서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리저리 배를 흔들어대기만 하는 것도, 작은 암초조차 피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도 결코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균형과 이해. 올바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가치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모순일 수 있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평화롭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