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하고 쫀득한 맛, 유과
색색의 쌀 튀밥이 두툼한 손가락 모양의 막대과자 위에 붙어 바삭하고 쫀득한 맛이 일품인 유과. 나는 명절 때나 맛 볼 수 있는 전통 과자 유과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는 전라도 진안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라셨다. 100년 쯤 전에 태어난 할머니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가족 구성으로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는 슬하에 5남매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동안에 내내 진안에 홀로 남아 계신 외상할머니를 생각하며 사셨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비롯해 할머니의 5남매는 어린 시절 진안에서 방학을 보낸 적도 많고, 자주 진안에 다니러 갔다.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굽이굽이 길이 난 산골짜기 동네에 다니던 일은 어린 엄마의 기억을 상당 부분 지배했던 큰 사건들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외상할머니가 진안에 살고 계셨다. 고원으로 이뤄진 진안은 공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이지만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동네다. 여전히 구불구불하고 산으로 뻗은 길을 통해 할머니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분께는 내가 외증손녀니까 그 시절의 할머니로서는 천수를 누리신 셈이다. 나는 그분을 떠올리면 하나의 이미지가 생각난다. 숱이 많지 않은 길고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은비녀로 쪽을 지고 연세답지 않게 꼿꼿이 등을 곧추 세운 모습, 그 모습으로 언덕 능선에 서서 우리를 반기던 모습이다.
외동딸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어린 시절 데려다 키우던 어른이 된 손녀와 손녀의 아이들을 반기는데도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지만 반가운 마음이 무뚝뚝한 모습을 뚫고 나왔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은 유과였다. 기와와 슬레이트가 섞여 엮인 지붕과 황토벽으로 만들어진 옛날집을 뒤로 하고 햇살 내리쬐는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았다.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던 유과의 달고 쫀득한 맛.
진안의 유과는 맛있다. 찹쌀을 농사지어 수확한 뒤 말려 빻아 반죽을 만든다. 서양의 빵 생지와 같이 얇고 밀도가 높은 반죽이다. 반죽을 밀대로 밀어 손가락 마디 정도의 긴 네모 모양으로 자른다. 모양을 잡은 찹쌀 반죽들을 아궁이에 불을 때 알맞게 따뜻한 방에서 숙성시키며 말린다. 네모로 잘린 반죽들이 며칠 간 그 방을 올곧이 차지하고 나면 유과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이 마무리 된다.
진안의 유과가 툭툭 부러지지 않고, 너무 찐득해 이에 들러붙지도 않는 것은 이 과정 덕분이다. 찹쌀 튀김 사이에 알맞게 공기층이 자리잡아 바삭하면서도 쫀득하다. 꿀이나 조청을 묻혀 오래 두고 먹어도 전혀 눅눅해지지도 절지도 않는다.
우리 집에선 명절 때마다 여전히 진안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먼 친척 할머니의 유과를 한 상자 주문해 먹는다. 추석을 위해 여름부터 ‘유과 반죽의 방’에서는 네모난 반죽들이 들고 나며 마른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내어 주는 맛있는 음식은 크고 오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옛날에는 잔치에 오르던 고급과자였지만 내게는 엄마로부터 내게로 이어지는 소중한 기억과 입맛으로 소소한 행복을 주는 과자다.
때론 소중하고 오래된 것이 기억으로만 남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또 다른 경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우리 딸아이에게도 유과를 맛보게 했다. 그 옛날 외상할머니에서 외할머니로, 그리고 우리 엄마에서 나에게로 이어졌던 사랑의 맛을 우리 아이에게도 올곧이 전달하고 싶다. 다행히 과자조차도 가리는 게 많은 우리 딸에게 조심스럽게 전달됐던 유과가 달고 맛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딸도 유과를 좋아하리라는 것을, 그 달고 쫀득한 맛에 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