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에서 인도어로-같은 방을 공유 한다는 것
같이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
결혼 생활과 연애는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었지만, 그것에 대한 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닥치지 않고서야 대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긴 연애를 했던 나의 사람이 결혼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만 우리는 같은 방에서 생활해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같은 화장실, 같은 샤워공간, 같은 쓰레기통, 같은 세탁기, 같은 싱크대, 같은 현관을 사용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사랑한 그 사람과 나는 결혼 했고, 그 사람은 여전히 같은 그 사람이다. 우리는 그저 같은 물건을 사용해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서로의 공간, 서로의 영역이 완전히 보존되는 것이 연애라면, 각자의 공간이 공유되기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이 결혼인 것 같다.
우리는 그럭저럭 비슷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형제자매 관계 속에서의 역할, 부모님의 습관이나 훈육 등이 달랐기 때문에 생활 습관도 다르게 형성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네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고, 꽤나 책임감을 가지고 동생을 돌보며 때로는 싸우며 지내왔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와 늘 생업전선에서 일과 살림을 병행하셨고, 그 사이에서 나는 살림에 꽤나 보탬은 되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 누구보다도 집안일을 많이 했다. 그래봤자 거의 하지 않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남자 둘-아버지와 남동생은 전혀 손도 대지 않는 수준이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버티셨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힘든 내색도 없이 그 모두를 견디시고, 자주 있는 아버지의 살림단속과 꾸지람을 버티셨을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긍정적이고, 멘탈이 건강하셨기에 그나마 가능했던 것 같다.
우리 집안 남자 둘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살림에는 담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청소 설거지 등에 능하지 않았다.
그나마 요리에는 취미가 있어서 남동생에게 신개념 요리를 해주곤 했다. 그래봤자 별거 아닌 레시피이긴 하지만, 음식을 하는 재미는 남동생 때문에 있었던 것 같다. 별다른 리액션을 보이진 않지만, 남동생에게 맛있는 걸 해주고, 그 음식을 동생이 다 먹으면 기분이 꽤 좋았다. 그 다음으로 즐겨하던 집안일은 빨래인데, 대학교를 다닐 때 내가 입어야 하는 옷을 제때 입고, 함께 빨지 말아야할 옷을 구분해서 빨기 위해 빨래를 시작했다.
매주 한번 정도는 내 옷을 흰옷과 색깔옷을 구분해 빨래하고, 때로는 수건도 빨았다. 그 뒤로는 가족들 옷도 내 빨래와 함께 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