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형 며느리에게 시댁이란

남과 가족이 되기까지

by 우주의 서랍

어제 평소에 좀처럼 남편 뒷담화를 안하던 친구가 남편 얘기를 꺼냈다. 다른 건 다 잘 하는데, 사실 특정 문제에서 꼭 부딪히고 있다는 이야기 였다. 그 문제는 시댁 얘기였다.


많은 결혼한 여성들에게 시댁은 여러 감정과 생각을 일으키는 단어라고 느낀다. 남성들도 처가를 떠올리며 이런 감정을 느낄까? 내지는 떠올릴 기회 라도 있는 걸까.


분명 시대가 변했다. 세상도 변하고, 남자와 여자의 고정적 역할이라고 생각되던 것들도 변하고 고정적 특성이라고 여겨졌던 것들도 변하고 남편 아내에 대한 자세도 변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은 2020년인데.

아직도 시댁 문제가 거론된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서글프다.

배우자의 가족에 대한 잣대가 다르다는게 당연할 수는 없는것이지 않을까.

시댁에는 잘하고 처가에는 대충하자. 이런 공식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모든 가정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댁과 처가를 떠나서 어쩌면 더 영향력 있는 집안에는 잘하고 덜 영향력 있는 집안에는 덜 잘하고 이런 공식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평이 어느선까지인지 모르겠다. 모두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하니까.


남과 남이 만나 부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 맞아도 다른 면이 있다. 이 다른면을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 삼을 거리가 생기고 그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고치려고 하느냐에서 불협화음이 난다.


그렇다고 문제를 삼고 싶은 문제를 그냥 눈 감아준다면 언젠가는 곪아터진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일에만 아무렇지도 안은 척 하도록 하자.


결국 곪아터지는 문제가 더 무섭다. 상처가 난 사람은 너무 아픈데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오히려 문제였다고 뒤늦게 말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프다면 아프다고 말하자. 부딪혔다고 바로 말해야한다기 보다 아프고 아픔이 반복되고 누적되고 언젠가 상처가 곪아 터질 것 같다면 그 전에 미리 말하자. 감정 없이. 나의 입장에서 말고 뉴스 기사처럼 깔끔하게 말해보자. 주어와 서술어와 형용사를 신경써서 건네주자, 말이 어렵다면 써서 주자.


어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조언이 나왔다. 그냥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그냥 다른 문화권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럼 그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다. 성별도 나이도 자라온 환경도 모두 다르다. 가족일지라도 다르고, 형제자매남매간 이라도 다르고, 절친한 친구일지라도 다르다.


내가 형성하는 문화는 나에게 적용되는 문화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내 배우자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이 사실만이라도 인식해준다면 어쩌면 조금은 서로를 받아드리기 편할지도 모르겠다.


배우자는 가족이지만 우리는 남이었다는 걸 그리고 남인 사람끼리 만나 가족을 일구게 됐다는 걸 다시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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