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지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놓쳤다
인생 까르보나라를 만나는 법
어느해 1월 2일 오후 7시 20분 경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 남편과 나는 멘붕이 와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한국에 어떻게 돌아가지? 당장 월요일 출근은 어쩌지? 망했다.
그렇다. 우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한국행 비행기를 놓쳤다. 우리가 공항에 도착한 건 출국시간을 39분 가량 남겨놓고 였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7시 50분 카운터 마감시간은 7시 15분 우리의 도착시간은 7시 11분… 하지만 항공사 카운터에서 체크인 거부..!!
몇번이나 복기(뜻: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봄 출처 표준국어대사전)해본 그날의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발단은 그놈의 산타마리아노벨라 사포네 벨루티나 비누에서부터 였던 것 같다.
제발 누가 신혼여행을 간다는데 선물로 어느 브랜드의 무엇인가 콕 집어서 사다달라는 미친 부탁은 하지 말길 바란다. 당사자는 혹시나 혹여나 하고 부탁하는 정도 일지는 모르지만, 누구는 그 부탁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놓치기도 한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사포네 벨루티나 비누는 처음부터 우리 발목을 잡았다. 이탈리아에 대해 아무것도 잘 모르면서 그저 와인이랑 파스타 피자가 맛있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신혼여행지를 이탈리아로 잡았다. 우리의 일정은 로마1-베니스1-피렌체1-로마2 이렇게 5박6일 이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매일 그 노벨라 뭐시기라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 당시 구글맵스는 지금처럼 정확하지 않았고, 5분 거리 장소도 15분~20분씩 걸리기 일수 였는데, 이동할 때마다 산타마리아노벨라 가게를 찾아다니는 바보같은 짓을 했다. 헌데 가게를 찾아도 연말연시 연휴라 그 마저도 닫혀있었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날 오후 1시경쯤 우리는 로마 산타마리아노벨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물건들을 폭풍쇼핑으로 쓸어담고 마냥 좋다니까 사돈의 팔촌의 선물까지 그 브랜드의 제품으로 하려고 골라담았다.
잔뜩 끌어담아 사기는 했는데, 문제는 이미 우리 캐리어는 포화상태 였다는 거였다. 애초부터 캐리어를 대형캐리어 달랑 하나만 가져간 것이 화근이었다. 이동이 워낙 많은 일정 탓에 남편이 캐리어를 끌어주면 좋겠다 싶어 그 많은 겨울짐을 캐리어 하나에 꾸역꾸역 담아 갔다. 오는 길에 짐이 많아 질 거라는 생각은 왜 스킵했을까.
결국 산타마리아노벨라를 나온 우리는 캐리어를 하나더 사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정에 없던 캐리어를 하나 더 사려니 괜시리 더 아까워 그 와중에도 저렴한 걸 골랐는데 그 몇만원 아끼려다 결국 백만원도 넘는 비행기 티켓을 날려 먹었다. 그 와중에 팬디 짭스러운 캐리어를 골랐는데, 바퀴는 두개 그마저도 부실한.. 사이즈가 아동용에 가까운 녀석으로 샀다. 캐리어를 사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선물 꾸러미를 꾸겨넣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점심을 못 먹어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갔다. 우리 비행기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50분..일단 숙소로 가서 택시나 밴을 타고 이동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숙소로 부랴부랴 걸어갔고, 도착한 숙소에서 캐리어에 짐을 꾸겨넣느라 또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 택시도 밴도 잡히지 않았다. 급한대로 숙소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니-숙소에서 단한번도 매니저를 만나지 못했다-지인이 밴을 운영하니 전화를 걸어 숙소로 가게 할테니 그 밴을 타고 공항을 가면될거라고 했다. 숙소 앞에서 30~40분도 넘게 발을 동동 거리며 밴을 기다리다 겨우 밴을 만나서 탔다. 헌데 공항 가는길은 왜 이리 막히는지 저녁시간이 가까워져 오면서 차량이 점점 많아졌다.
운전기사에게 우리 비행기 시간을 이야기 하며 괜찮겠냐 비행기를 탈 수 있겠냐 물으니 그는 계속 충분하다 탈수있다고 했다. 현지인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괜찮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출발시간이 1시간 안팎이 되자 너무도 초조했다.
헌데 그 와중에 또 문제가 현금이 충분이 남아있지 않아 밴 비용을 지불할 현금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기사는 운전하며 길에 보이는 ATM을 가리키며 저기서 뽑을 수 있겠냐 저기서 뽑아야되지 않겠냐고 급한 우리 맘에 기름만 계속 부었다. 우리는 워낙 급하니 공항ATM에서 뽑아 주겠다고 했다.
결국 공항 도착시간은 7시경쯤 비행기 출발 시간을 40여분 남기고 서였다.
항공사 카운터로 뛰어가니 이미 그들은 정리를 마친 상태였다. 태워달라고 갖은 영어를 다 동원해가며 애걸복걸 협박 회유를 다 해도 그들은 우리를 비웃듯이 절대 체크인을 해주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우리 뒤로 어떤 배낭을 맨 서양청년은 인터넷 체크인을 했다며 호다닥 들어갔다.
절망.. 멘붕.. 그때 우리는 진짜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화와 짜증이 나더라도 이제 의연할 것 같은데, 그때의 우리는 그냥 마냥 패닉이었다.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의 그 몇십분이 진짜 피말리는 지옥 같았다. 비행기는 분명 아직 이 공항에 이 땅에 있는데 우리는 타지 못한다니..
비행기가 결국 출발하고, 멍하니 한참을 있다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항공권결제대행 사이트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다음날 혹시 노쇼인 빈자리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 항공사 카운터에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우리는 로마에서 집없는 고아가 된 심정으로 터덜터덜 공항을 헤매다가 이렇다할 대안이 없어 일단 로마에서의 첫날 머물렀던 티버호텔로 가는 공항 리무진을 탔다.
공항 리무진 안에서 아고다로 티버호텔 1박을 결제하고 멍하니 있는데, 티버호텔 리무진 기사가 말을 건다.
네, 우리는 신혼여행 중인 한국 사람인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쳤어요.
그렇구나. 그럼, 이따 나랑 같이 로마 시내로 놀러가지 않을래?
아니요 됐어요 그냥 쉴래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 로마 시내에 같이 가서 놀면 재밌을 텐데. 그런데 너네 내일 저녁에 또 티버호텔에 올 것 같다
아니에요. 내일은 비행기를 꼭 탈거에요.
티버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우리는 유일하게 근처에 문을 연 로마첫날의 그 레스토랑으로 갔다. 로마 첫날의 그 설레임으로 시작했던 그 레스토랑에서 절망 후의 식사를 한다. 이게 뭐람.
로마에서의 첫 아침을 티버호텔에서 맞이하며 그 풍경 그 조식 그 갈매기 그 바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져 다음번에 여행오면 티버호텔에서만 며칠을 보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 바람이 너무 간절했나보다 그 여행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루어 졌으니 말이다.
저녁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우리는 정신도 없이 그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로 공항 카운터로 향했다. 혹여나 빈자리가 있어도 순서를 뺐기면 안되니 서둘렀다.
공항 항공사 카운터는 오후 2시쯤 열었다. 그 전까지 우리는 그 앞에 죽치고 앉아 우리 앞에 앉은 대만 아줌마와 간간히 수다를 떨었다. 저녁 7시반 비행기를 타러 오전 11시부터 온 의사 딸을 둔 아주머니… 우리는 40분 남겨놓고 왔으니 말 다했지 뭐.
항공사 카운터 직원은 우리 얘기를 듣더니 그 말이 참 이상하단다. 누군가 오지 않아 노쇼인 자리가 있더라도 그 자리는 그 사람의 이름으로 된 좌석이기 때문에 우리가 앉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시 항공권예약대행 사이트와 얘기를 나눠보라는 것이었다. 또 멘붕..
결국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고 상담사와 연결되어 상황을 설명하고 항공사 카운터 직원과 직접 통화를 해보시라 전화를 넘겨주니 다짜고짜 전화를 끊더라. 영어가 몹시 부담스러웠나보다.
결국 고객센터에 다시 걸어 거센 항의를 하니 전날 통화한 상담사가 잘못 안내 했던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그 이야기 때문에 하루를 공항에 묶여있었는데.. 그때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는 한국어로 고함이 여러차례 울려퍼졌다. 다시 멘붕에 빠진 우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 항공사 발권창구를 들러 한국에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가 뭐가 있는지 묻고 다녔다. 몇군데 항공사를 헤매고 여행사를 헤매고 그 마저도 저녁 시간이라 몇몇곳은 이미 닫았었다. 1층과 2층을 오가며 겨우 아랍에미라이트 항공사에서 내일 출발해 두바이를 경유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즉석에서 신용카드를 긁어 예매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리무진 기사의 예언처럼 다시 티버호텔로 향하는 리무진을 탔다. 저녁식사를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또 그 레스토랑에 가지 않았을까..
드디어 마지막 로마의 날이길 바라는 날..
현금이 없었던 우리는 마지막 점심식사를 카드 사용이 확실히 가능한 티버호텔 레스토랑에서 했다.
메뉴판을 둘러보다 까르보나라와 감자튀김을 시켰는데.. 우리는 그때 알았다. 이 까르보나라를 먹기 위해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다는 것을.. 베이컨 대신에 두툼한 삼겹살이 들어간 찐득한 까르보나라.. 지금도 그 까르보나라가 진정 우리 인생 까르보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까르보나라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놓쳤다고 감히 말하곤 한다.
우리는 무사히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꽤 좋은 기종의 비행기로 편안하고 재밌게 영화를 보며 즐거웠고, 경유지로 들른 두바이 공항에서 중동의 신비로운 분위기 신기한 두바이 제품들을 구경하고 사며 즐거웠다. 서울에 도착하니 일요일 저녁이었다. 월요일 출근까지 딱 맞춰 도착했던 것이다.
그 뒤로 항공권구매대행 업체에서 미안하다며 공항세와 유류할증료라도 환불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큰 돈이 환불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에피소드를 가진 신혼여행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진저리를 치며 그 기억을 떠올렸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 기억과 에피소드에 너무 감사해하며 언젠가 그냥 무작정 공항으로 가서 즉석에서 티켓팅을 해 어딘가 훌쩍 떠나보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우리를 곤란하게 한 사람 중 한명인 밴의 기사에게 차비를 지불할 때 중국돈으로 차비를 지불했는데(원래는 경유지인 베이징에서 1박을 하며 쓸 요량으로 가져온 위안화였는데 현금이 없으니 그거라도 달라고 해서) 나중에 헤아려보니 정신이 없어서 인지 모르겠지먼 환율 계산을 엉망으로 잘못해서 말도 안되게 적은 돈을 주고 말았던 것이다. 밴 기사에게 미안하면서도 지폐를 넘겨주며 너무도 당당하게 원투쓰리포파이브를 외쳤던 내 모습이 또렷리 떠올라 챙피하면서도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