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여름수련회

추억을 사지 않은 것은 다행일까

by 우주의 서랍



사실 아버지의 내력은 그에게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피는 못 속이는 지라 나 역시도 자린고비와 같은 행태를 하고는 하는데, 초등학교 적 수련회를 가는 길에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신 만원에 얽힌 일화를 대표로 얘기할 수 있다.


어머니는 2박 3일 떠나는 나를 위해 만원 한장을 손에 들려주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과 어쩐지 미안한 마음으로 그 만원을 꼭 쥐고 주머니에 넣었다. 수련회를 갔던 때는 오유월의 더운날이었다. 캠프장에 도착하자 마자 버스에 실려온 아이들은 우르르 내려 매점으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뛰어갔다. 그 무리 뒤로 나와 내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우리 역시도 매점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점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과자며 음료수를 하나씩 두개씩 사 손에 들었다. 나도 주머니에서 만원짜리를 꺼내었다. 하지만 그 예쁜 모양새가 천원짜리 오천원짜리로 바뀌어지는게 이상하리만치 싫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친구들 옆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몇차례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과 함께 매점으로 달려갔지만, 내 손에는 만원짜리만 남아있고, 아무 소득없이 멀뚱이 서 있기만을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련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렇게 참을성이 났나 신기하기도 하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 캠프파이어를 했다.

거미와 새끼 거미 이야기로 온 운동장은 부모님을 떠올리는 아이들의 눈물 바다로 일었다.

불효자로서의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 효자 효녀로 거듭나는 삶을 다짐하며 아이들은 캠프파이어가 끝나자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갔다.

초록색 공중전화에 땡그랑 200원을 넣어 저마다 아이들은 제 부모님께 울부짖었다.

엄마 나 괜찮아 잘 있어 하고 하루도 안된 안부를 전하는 아이들 뒤로 나는 또 쭈뼜대고 있었다.

내 수중에는 만원짜리 한 장은 있었지만, 동전은 없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기 위해 만원짜리를 교환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너는 집에 전화 안드려 라는 걱정섞인 물음이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그 마음마저도 뒤로하고 집에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뭐 라는 생각때문이었을까.


그 뒤로 이내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들른 기념품 가게에서도 나는 쭈뼜거렸다. '화목한 우리집'이 새겨진 나무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저마다 효자 효녀된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고, 우리집도 화목한 집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나 역시도 '화목한 우리집만'은 갖고 싶었다. 그 목판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쉬는 시간이 끝나 이내 버스 안 좌석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사오지 않기를 잘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원은 지켜낸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한쪽 마음은 아렸다.


시간이 지나고 그 행동을 후회해보기도 했다. 왜 다른 아이들처럼 행동하지 못 했을까.

나에게 그 만원은 없어서 안되는 돈은 아니었다. 애초에도 없었던 돈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게 수련회 당일 아침 어머니가 손에 들려준 돈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꼭 반드시 비상시에만 써야하는 비상금으로 생각한 것인지, 단순히 아까워서 그랬던 것인지 등은 이제와서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어머니께 전화를 하고 분명히 버렸을 기념품을 산 그 아이들의 순수함이 부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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