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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단상

문제는 '마음'이다

2023.5.11.

by 하얀밤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저희도 기회를 드리는 중입니다.'


" 들으세요. 이거 녹음하고 있어요."

'이 전화기도 자동녹음 됩니다.'


"제가 직접 나서면 더 힘들어지실 겁니다."

'그냥 직접 오세요.'


"책임지실 건가요?"

'책임질 일이 없어요...'


"이틀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



어제,

민원인과 통화한 동료는

하고 싶은 말은 작은따옴표에 가두고

연신 '네, 네.'만 했다 한다.


오늘,

그 민원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갑자기 문서 속의 주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문서 속 문장이 비문이라 했다.

어제는 전혀 없던 이야기였다.


대책 회의가 열렸다.

민원인이 이의제기한 문장을 뜯어보았다.

비교, 대조의 의미로 사용된 보조사 '은/는'이

주격 조사인 '이/가'처럼 사용될 수 있을까?

보조사는 격조사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이 문장은 '은/는'보다 '에'와 '에서'의 차이가 문제다,

무생물과 생물에 쓰이는 조사에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한참 의논을 하다가

이 민원인이 문장 하나를 계속 거론하는 것의

본질을 보기로 했다.

그인들 이것이 억지인지 모를까?

그는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저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지금 물러나면 체면이 살지 않으므로.


회의 방향이 180도 바뀌었다.


"마음을 달래줍시다"


그에게 국어 문법 강의를 장황하게 한들

뭐가 달라질까.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 사람은.

아픈 마음을 달래주어서

스스로 흡족한 기분을 느끼며 떠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우리가 가진 해답이었다.


이대로 끝이 나면 좋으련만..


(또 통화를 해야 하는 동료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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