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오늘 하루 주인답게 잘 보냈다

2023.6.20.

by 하얀밤


교육부 지침에 따라 독감이 걸린 경우는

열 내린 후 24시간 지나 등교가 가능하다.

라면을 찾을 정도로 식욕까지 돌아온 아들이지만

오늘 하루 더 쉬어야 한다.


혼자 둘 수 없어 나도 하루 쉬었다.

애도 이제 덜 아프겠다,

나에게도 쉼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


딸을 등교시키고

늦게 일어난 아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오늘은 여유가 더 있으니

평소 청소기가 잘 닿지 않는 곳을 닦았다.

구석진 곳을 닦으니 새까만 때가 나왔다.


오늘은 여유가 더 있으니

미처 빨지 못한 계절 지난 옷들을 세탁했다.

빨래 건조대에 펼쳐진 옷들이 낮 햇살에 빛났다.


아들 점심밥을 챙겨주고,


오늘은 여유가 더 있으니

냉장고 구석에 손을 뻗었다.

여기저기서 받은 소스들이 한 움큼 나왔다.

오늘은 여유가 더 있으니,

음각 양각된 희미한 유통기한을 보며 분류도 했다.

유통기한 하루 남은 요구르트는 꿀꺽꿀꺽 마셨다.


오늘은 여유가 더 있으니

아이 가방도 빨아볼까,

현관도 청소해 볼까,

오늘은 여유가 더 있으니 말이다.





음,

오늘은 분명히

여유가 더 있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벌써 해가 지려고 하는지?


스스로 일들을 선택해놓고

왜 어두워지는 하늘에다

억울하다 외치고 싶은지.



아니,

억울할 거 없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인데.

내 집의 일을 내가 한 것인데.


주인이 주인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오늘 하루,

주인답게 잘 보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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