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언젠가 나를 응원하던 그 사람처럼

2023.6.26.

by 하얀밤


뚜둑.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잠을 쫓기 위해 손가락을 꺾는다.


토톡.

아들이 보낸 반쯤 빠진 오른쪽 어금니 사진에

놀란 내가 시계를 본다.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끼익.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기지개를 켜고는

화장실에 가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예산이 줄었지만 버스 대절비를 비롯한 지원은..."

담당자의 목소리만 대강당에 울려 퍼진다.


나른한 오후

습한 날씨를 뚫고

'1기관 1인 필참' 문구가 쓰인 공문 때문에

(억지)출장을 나온 약 100명의 사람이

대강당 의자에 앉아 반쯤 졸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진다.

PPT속 사진과 글자가 의미 없이 부유함을

그도, 우리도 느끼고 있다.


이 자리는 그들이 해온 사업의 성과를 알리는 자리다.

'이만큼 했으니 이제 같이 하자'가 요지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고와 성과를 알리는데 급급하여

안타깝게도 참석 대상의 절반 이상이

사업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점을 놓쳤다.

현장의 목소리를 간과했다.


지루해진 내 눈앞에

'1기관 1인 필참' 문구와

아들의 덜렁거리는 이 사진이

오버랩된다.


그냥 자리를 뜰까 싶었을 즈음,

담당자의 목소리가 더 심하게 떨려온다.



,

많이 긴장되나 보다.


지금 이 순간

시큰둥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기억될 텐데.

잊기까지 그는 얼마나 자책을 할까.


매서운 눈빛 하나라도 줄여주려고

자리를 고쳐 앉았다.

자, 말해봐요. 들어줄게요.

살짝 미소 지으며 끄덕여줬다.


언젠가 내가 마이크를 쥐고 떨고 있을 때

미소를 지어주던 그 아무개 씨처럼.

한참 동안 기억에 남았던

그 고마운 아무개 씨처럼.


나도 오늘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아무개 씨가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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