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사소한 문제에 지지 않은 날

2023.7.14.

by 하얀밤


#1

PC 점검 프로그램이 실행돼서

별 생각없이 툭툭 클릭했는데

윈도우 버전이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한창 바쁠 때 컴퓨터가 먹통이 되었다.

일은 내일 해야겠다,

그럴 수도 있지,

했다.




#2

저녁에 마라탕이 먹고 싶었다.

마라탕 한 그릇과 꿔바로우를 주문했다.

마라맛 국물맛을 생각하며 빨래를 돌리니 신이 났다.

띵동.

배달온 음식은 마라탕 두 그릇.

꿔바로우는?

아니, 사장님!!

따지려다가 혹시나 앱을 켜서 확인해 보니

내가 주문을 잘못 넣은 거였다.

오늘 뭔가 좀 꼬이네,

했다.




#3

경박스럽게 튀어 오른 쌀국수 면발 하나가

새빨간 마라 국물을 옷에 튀기던 순간,

로봇 청소기가 멈췄다.


"메인 브러시를 확인해 주세요."


옷에 묻은 마라탕 국물을 닦고 있는데,

"메인 브러시를 확인해 주세요."


마라 국물에 적신 푸주를 건져 올리려는데,

"메인 브러시를 확인해 주세요."


로봇청소기를 잡아 올렸다.

긴 머리 여자가 둘이나 사는 집에서

긴 머리카락을 칭칭 감은 메인브러시가 종종 멈춘다.

그게 오늘이었다.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로봇청소기를 뒤집어 분해하고 브러시 청소를 했다.

청소 후 떠먹는 마라탕 국물은 차가웠다.

남은 건더기를 버리며

오늘따라 왜 이러지?

했다.




#4

설거지를 하려고 에어팟을 꼈다.

설거지하는 시간은 유튜브 <황심소>를 듣는 시간이다.

악성 민원으로 소아과를 폐과 하게 된 의사 선생님이 나온다.

수세미에 묻은 풍성하고 쫀쫀한 거품처럼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중에

'띠룽'

에어팟이 방전되었다.





!

!!

왜!!!


머릿속에 사이렌이 올리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들 소리가 더 씨끄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

이런 순간,

'멈춰'를 외치고

떠올려야 하는 말이 있다.

언젠가 <황심소>에서 들었던 그 말.


★성공은 삶의 모든 문제에서 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인생을 뒤흔들 만큼의 큰 문제 앞에서는

오히려 담대하고 침착했었다.


나를 흔드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이었다.


낙수가 바위를 뚫지 못하도록

오늘도 소소한 낙수에 지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아 본다.


윈도우는 업데이트되면 성능이 좋아지니 잘 된 일이고,

배달 앱 주문은 다음에 신중하게 하면 될 것이고,

청소기는 관리 주기가 돌아온 것일 뿐이고,

에어팟은 미리미리 충전해 두면 될 일이다.


낙수 방울을 손바닥으로 받아서

비벼 말려 보낸다.


오늘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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