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나는 아이들이 '지구촌'에서 살길 바란다

2023.8.10.

by 하얀밤


"Oh, Jenny!!"


딸이 빅벤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영국 사람 크리스 선생님은 눈을 빛내며 기뻐했다.

Jenny는 딸의 영어 이름이다.


크리스 선생님은

"Jenny! Come here!"

하며 딸을 원장 선생님께 데리고 갔다.

원장 선생님인 니콜라스 선생님도 영국 사람이다.

두 사람은 빅벤 사진을 보며 무척 좋아했다.




우리 아이들은 니콜라스 선생님이 운영하는 어학원에

5년째 다니고 있다.

니콜라스 선생님은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해서

우리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기도 하다.

선생님 집 아이들은 우리 애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아들은 아들끼리 딸은 딸끼리 친구로 지낸다.


원장 선생님이 직원의 근무 환경을 좋게 해주셔서

원어민 선생님들의 근속 기간도 긴 편이다.

크리스 선생님도 근 10년째 근무 중이다.

크리스 선생님도 우리 동네 사람이라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을 '한국에 사는 외국 사람',

외국에서 사는 걸 도전적으로 선택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냈다.


내가 직접 영국에 가보기 전까지.


영국이란 나라는 우리나라와 완전 딴판이었다.

사람 생김새도, 언어도, 화폐도, 음식도,

자동차 주행방향도, 신호등 모양도, 길의 생김새도,

건물의 모양도.


여행자의 눈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 '다른' 것들이

내가 살아가고 가족까지 이룰 수 있는 곳의 환경이 되면 어떨까.

과감히 훅 뛰어들어 내 삶을 펼칠 수 있을까?


고작 12일 밖에 안 되는 여행에 지쳐서

한국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경험을 한 덕분에

니콜라스 선생님과 크리스 선생님,

그리고 얼마 전에 한국인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다른 원어민 선생님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다른 말과 글,

다른 사람들의 생김새,

다른 길의 모양, 나무 모양,

다른 문화, 경제, 정치 환경에서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사랑을 하며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그들처럼 넓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이 어학원에 보내게 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다.


영어를 딱딱하게 공부하는 과목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땅에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수단으로 삼길 바랐다.


이 학원을 다니는 동안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출중해진 건 아니지만

내가 살아갈 세상이 대한민국만이 아니고,

내가 살아갈 방식이 부모가 살아간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히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딸이 보여준 빅벤 사진을 본 영국 선생님들의 마음은

오랜 외국 생활을 하던 한국 사람이 경복궁 사진을 보는 기분과 비슷할까.

아마도 그렇게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잊지 못할 이름,

'다케모토 유키코'

내 일본인 펜팔 친구.


나는 공무원 시험, 친구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우리는 서로의 언어로 편지를 써서 주고받았다.

시험을 준비하며 느끼는 아픔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데에는 국경도 언어도 장벽이 될 수 없었다.


서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서서히 멀어졌지만.


내가 유키코와 나눴던 마음은

한국인 어느 친구보다도 진실되고 깊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을 너머 더 넓은 세상에서

유키코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

.

먼 나라에서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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