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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단상
아이에게 화가 날 때는 예뻤던 순간을 떠올린다
2023.8.9.
by
하얀밤
Aug 9. 2023
거실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던 아들이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 에어컨만 약하게 켜 놓아서
방에 들어가면 더운데 왜 들어가나 싶어
방문을 사알짝 열어보니
영어 학원 숙제를 하는 중이다.
급하게 움직이는 연필이 제법 다급해 보인다.
우리집에는 학원 숙제를 하지 않고 게임을 하면
하루동안 게임 금지라는 룰이 있다.
게임하던
중에 갑자기 생각이 났나 보다.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울컥 화가 났다.
방문을 벌컥 열고
"게임 금지야! 엄마 말을 뭐로 듣는 거야!"
라고 외치려다가
한 템포 쉬고,
나만의 워~워~ 방법을
사용해 본다.
바로
'아이가 예뻤던 때를 떠올리기'
다.
어렵지 않다.
이 방법을
써야지 생각하면
뭐든 즉시 떠오른다.
아들이 여덞 살
때였나,
어느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꿈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처럼 화산이 터지고 주변이 불탔어.
사람들이 도망가다가 죽고,
우리 가족도 도망을 갔는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나빼고 우리 가족들이 다 떨어져 죽어버린거야."
무슨 그런 험한 꿈을 꿨느냐고 말하려는데
"그래서 나도 같이
뛰어들어서 죽었어."
라는 것이 아닌가.
말문이 턱 막혔다.
"꿈에서는 현실 같잖아. 그런데도 정말로 그렇게 했어?"
"응"
"너라도 살아야지."
"가족들이 다 죽었는데 나혼자 살아서 뭐해."
"안 무서웠어?"
"
무서웠어.."
아이의 이야기가 가진 엄청난 무게에
전율이 흘렀다.
자기 몸을 던질 때 이겨냈을 공포의 크기만큼
힘껏 품어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오늘 실천했다.
가족을 저렇게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인데
건강하게 안 아프게 잘 커주는 게 고맙지,
숙제쯤이야.
지금이라도 하는 게 어디야.
훈훈해진 마음으로
조용히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에어컨을 더 빵빵하게
아들 방쪽으로 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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