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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역 사건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
2023.8.8.
by
하얀밤
Aug 8. 2023
서현역 흉기 난동을 일으킨
범인의
신상에 대해 알게 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울증, 조현병, 특목고 진학 실패'라는
단어들로 점철된 기사들을 접하니
드라마에서 보았던 몇몇 인물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
속, 잘 나가는 변호사 부부에겐
공부 잘하는 착한 아들 외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입시에 실패한 후 입을 닫고 히키코모리가 된 첫째 아들이었다.
그들은 첫째 아들이
유학을 갔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
굳게 닫힌 방문 너머 아들과의 대화도
포기했다
.
드라마
<스카이캐슬>
첫 화
마지막을
하얀 눈 위에서 총으로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장식한
엄마의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
서울대
입학이라는 엄마의
최종
소원을 이뤄준 아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출을 했다.
(물론 부모가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입시의 부담으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픽션에만 존재하겠는가.
내 주변에도 이런 아이가
있었
다.
늦둥이로 태어난 아이가 제법 똑똑해 보이자
부모는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학원과 영재원에 밀어 넣고
과외 선생을 붙여 해리포터 원서를 하루에 스무 페이지씩 읽고 해석하게 했다.
엄마가 무서워 시킨 대로 잘하던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같은 반의 말 없는 아이와 친해지기 시작했고,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울려 다니다가 2학년부터는 급기야 외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달라진 그 아이의 눈빛을 기억한다.
사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만큼
낯을 가리던 순한 아이가
엄마 이야기에
매섭게
눈을 번뜩이던 그 순간을
,
지금도 서늘하게 기억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도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온갖 질책, 비난, 비교를 당하며 공부를 했다.
칭찬은 근거가 없는 두루뭉술한 것이었기에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고, 질책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를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부모의 뜻에
의문을 품거나 거스른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가서 고3부터는 가위눌림과 환청에 시달렸다.
머리 긴 귀신이 벽에서 나와 쳐다본다고 하자, 아빠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머리맡에
달마상을
걸어주었다.
달마의 발에 밟히는 기분에 가위눌림은 더 심해졌다.
환청이 들린다고 하자, 아빠는 말없이 나를 절로 데려가 대웅전에 한 시간 동안 앉혀뒀다.
신앙심 없이 멍만 때리는 학생에게 부처님도 별로 할 말이 없는지 같이 멍을 때려줬다.
내 가위눌림을 완화시켜 준 건 친구였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던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를 해보라 했다.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던 밤,
나는 쾌감을 느꼈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란 나의 첫 일탈이었으니까
.
서현역의 그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중학생 때 수학 올림피아드에 입상을 할 정도의 아이에게
부모는 분명 큰 기대를 걸었을테고
,
아이도 부모가 시킨 대로
잘
따랐을 것이다
.
그러나,
잘 나가는 형처럼 되지 못하고
특목고 진학에 실패했을 때
,
아이가 느꼈을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과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분명
중학생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중퇴라는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사는 그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대했을까.
영재인 아이에게 기대를
걸고 관심을 가졌던 부모는
형처럼 특목고에 진학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던 아들이
평범하게 일반계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하고
지방 국립대를 다니며 홀로 지내면서
성격 장애 진단까지 받았을 때
어떤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을까.
그가
망상에 빠져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까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몇이었을까.
왜 더 좋은 성적을 못 냈냐고,
왜 더 좋은 학교를 못 갔냐고 묻기 전에
,
너의 기분은 어떠니,
네가 원하는 건 뭐니,
너는 어떤 사람이고 싶니,
라고
누군가가 물어주고
그가 대답을 해줄 때까지 기다려줬더라도
그는 그런 흉악한 짓을 저질렀을까?
이 땅에서 아이로 커 온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너무 많이
너무 무겁게
너무 아프게
던져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희생당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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