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환자인걸까.
2023.8.11.
홀수해에 태어난 나는
올해 국가건강검진 대상자이다.
위내시경까지 한꺼번에 하려고 기본 검진은 예약잡아 하기로 하고 구강검진부터 받기로 했다.
나는 치과를 자주 가지 않는 편이다.
어릴 때 양치질을 게을리해서 치과 치료를 자주 받았던 터라
어른이 되어서는 양치를 꼼꼼히 한다.
매일 치실과 치간 칫솔을 쓰기 때문에
철들기 전 가지고 있던 썩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10년 가까이 충치가 진행된 바가 없다.
사랑니도 신기하게 네 개 다 났는데
어금니 역할을 해서 잘 쓰는 중이다.
워낙 안쪽에 자리잡은 이들이라 양치질 하기 까다롭지만
매일 잘 닦는다고 자부한다.
2년 전 국가건강검진으로 구강검진을 한 이후로
처음 치과에 가는 거라서 이번에도 스케일링을 추가로 받기로 하고
집에서 가까운 치과들을 검색해서 리뷰를 살펴봤다.
오호.
집 바로 앞에 생긴지 얼마 안 된 치과가 평이 꽤 좋다.
과잉진료가 없다는 평이 많다.
여기로 결정.
스케일링의 하고 난 뒤의 상쾌함을 떠올리니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인테리어한지 얼마 안 된 새집 냄새가 가득한 치과로 들어섰다.
간호사들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대기를 하고
별로 눕고 싶지 않은 치과 베드에 누웠다.
눈을 가리고 입을 벌렸다.
의사가 와서 이를 살피더니 말했다.
"치과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2년이요."
"휴.."
왜 한숨을 쉬지?
의사는 말을 이었다.
"X번, X번 치아 발치 필요하고요,
X번, X번, X번은 레진으로 떼우시면 되고요,
X번, X번, X번, X번은 정지 우식이니 그냥 두세요.
예전에 씌우신 게 있네요.
나이가 들면서 잇몸이 내려앉아서 씌운 주변을 좀 떼워야됩니다.
이건 보험되는 재료로 하시면 되겠네요."
몇 번, 몇 번?
의사는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게 꿈인걸까.
"사랑니가 네 개 다 있으시네요."
그럼요. 건강한 사랑니는 제 자랑입니다.
"사랑니는 일단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 거고요.
왼쪽 아래 위는 괜찮은데
오른쪽 위에 충치가 좀 있네요.
밖에서부터 충치가 시작이 되어서 돌이킬 수 없어요."
내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사랑니가 순식간에
초라한 패잔병처럼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었다.
부끄러움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눈앞이 확 밝아졌다.
눈을 가리고 있던 커버를 벗긴 간호사가 손짓을 했다.
"잠시 따라오세요."
"스,스케일링은 안 하나요?"
"상담 먼저 받으시고요."
"상담부터 받으라고요?"
"네. 따라오세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리뷰 단 사람들, 돈 받았나.
나는 치과 상담실이 싫다.
입 안을 찍은 민망한 사진을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함께 보면서
잘못된 것만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침방울이 부글거리는 추한 입속 사진이 대형 스크린에 떴다.
헙, 숨을 들이쉬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
"X번, X번, X번은 개당 8만원이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X번은 보험되는 걸로 가능하세요."
"보험되는 건 얼마인데요.."
"만원 정도 합니다."
"네.."
"오른쪽 위 사랑니는 발치를 해야 하고요.
발치를 하게 되면 아래 사랑니가 솟아올라요.
그러니 같이 발치해주셔야 해요."
내가 치과 상담실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8만원, 10만원 하는 금액들에 놀라지 않은 척 해야 하는데
이미 손을 모아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꿈 속처럼, 물 속처럼
속사포같은 말이 웅얼거리듯 들렸다.
나는 '우습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런 내 생각조차 읽히고 있는 것 같았다.
나같은 사람만 하루에 몇 번을 볼텐데.
아무리 '척'해봤자 저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
내가 가고 나면 간호사들과 내 이야기를 할까?
아닌 척 하는데 속이 다 보였다고,
오늘도 그런 손님이 왔다고 웃을까.
속사포같은 저 말은 얼마나 연습을 한 걸까.
한 번도 안 더듬네.
아마도 실장이라고 불릴 그녀는
비행기 이륙전 안전 멘트를 하는 스튜어디스처럼
우아하지만 연습된 듯한 멘트와 제스처를 했다.
그녀는 말을 끝내고 나를 다시 베드로 안내했다.
스케일링을 하는 동안
도구가 신경을 긁는 고통과 함께
말 못할 무거움이 가슴 한 가운데를 누르는 고통을 느꼈다.
구강검진을 마치고 나오는 나는
고약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입 안에 충치를 가득 품은,
뽑아야 할 이를 게을러서 뽑지 않는
정지 우식인지에 그나마 감사해야 하는.
내리 쬐는 햇살이 나를 야단치는 것 같았다.
치과를 가기 전이나 후나
내 이는 하나도 아프지 않고
스케일링을 한 게 티가 안 날만큼 치석도 별로 없는데
나는 정말 환자인걸까?
나는 언제부터 환자인걸까?
나는 곧 환자가 될까?
아니, 벌써 환자인데 병식이 없는 것인가?
아프지 않은 내 감각이 우선인가
의사의 진단이 우선인가.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내 감각을 믿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나는 아직 환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