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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단상
나는 오늘 딸이 되고 엄마가 되었다
2023.8.12.
by
하얀밤
Aug 12. 2023
"자, 들어가자."
쭈뼛거리는 딸의 손을 잡아끌어
핫한 탕후루 집으로 들어갔다.
색색의 과일들이 반짝이는 설탕코팅을 입고
진열되어
있었
다.
딸이 먹고 싶어 하던 샤인머스캣 탕후루를 주문해서
손에 쥐어줬다.
설탕 코팅이 파삭, 경쾌하게 부서졌다.
"맛있어, 엄마!"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큰 과업을 이룬 사람처럼 행복해진다.
"엄마도 한 입 해볼래?"
"아니, 엄마는 쌀국수 먹을 거야."
나는 아이에게도 내 취향은 분명하게 말한다.
딸은 깨끗하게 단념하고
마지막 남은 샤인머스캣을
깨물었다.
오늘은
딸과
함께
번화가로 마실을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주 놀러 나왔던 곳이고
대학시절을 보낸 곳이라
골목골목 구석구석 추억이 깃들어 있다.
열일곱 살 때,
여자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마음이 맞는 반 친구들과 모여
옆 남학교 학생들과 단체 미팅을 했었다.
우리는 수줍게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먹고는
노래방에서 땀이 나게 노래를 부른 뒤 쿨하게 헤어졌었다.
그 햄버거집
앞을 딸과 함께 지나갔다.
딸에게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줬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엄마는? 엄마는 누구랑 잘됐어?"
"우리 반 반장만 커플
성공했었어."
당시 우리 반 반장은 한복이
잘 어울릴 법한
단아한 학생이었는데
학생 신분에 미팅이 뭐냐며 극구 반대하더니
유일하게 커플이
되었었다.
커플은
꽤 오래갔던 걸로 기억한다
.
쌀국수를 먹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쇼윈도에 비친 딸과 내 모습을 보았다.
아,
내가,
그토록 원하던
딸과 다정하게 걷는 엄마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생업이 바빠 억척스럽게 산 우리 엄마는
매일
돈돈돈, 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우리 엄마가
스킨십도 안 해주고
다정한 말도 안 해주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따뜻한 손길과 말은
돈과 상관없는데 말이다.
다정하게 붙어서 걷는 건
장 보러 가는 바쁜 걸음을 걸으면서도
가능한 것인데 말이다.
엄마에 대한 원망을
하기보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을
딸에게 해
준다.
쇼윈도에 비친 딸은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고,
쇼윈도에 비친 나는
내가 바랐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는 오늘
딸이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하며
흐뭇하고
즐거운 산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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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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