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단상

밝은 색 옷은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가르쳐 줄 거야

2023.8.13.

by 하얀밤


"밝은 색 옷이라 교환, 환불 불가입니다."



점원이 옷을 개어 쇼핑백에 넣으며 말했다.

내가 놀라 물었다.


"옷에 하자가 발견되어도 교환, 환불 불가인가요?"


손을 멈춘 점원이 나를 바라봤다.


"어떤 하자 말씀이시죠?"

"박음질이 잘못되었다거나 핏이 뒤틀리거나 하는 거요."

"네, 그래도 밝은 옷은 안 돼요."

"뭐라고요?"


옆에 서 있던 딸이 내 옷자락을 꼬옥 쥐었다.

엄마가 싸우는 줄 아나보다.


"밝은 옷은 피팅도 금지라고 탈의실 앞에 적혀 있던데요.

입어 볼 수도 없는데, 교환 환불도 안 된다고요?"

"그럼 입어 보시든가요."

"밝은 옷을 입어봐도 되나요?"

"네, 입어 보세요."


딸을 데리고 탈의실로 갔다.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괜찮아. 입어보라 했으니 입어 보자."


핏은, 음..

노코멘트하겠다.

아이가 좋다고 고른 옷에 내가 왈가왈부해서 좋았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탈의실에서 나와 점원에게 계산하겠다고 했다.

점원은 옷을 구기듯 접어 쇼핑백에 넣었다.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나도 기분이 상했다.




우리 동네에 오픈한 지 일 년 정도 되어 가는 이 가게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반짝이는 하얀색 간판이 화려한 입구를 들어서면

아이들이 좋아할 산리오 캐릭터가 한가득이다.

펜, 필통부터 커다란 인형까지 다양한 산리오 굿즈 옆엔

다양한 캐릭터가 인쇄된 그립톡, 집게핀, 액세서리가 진열되어 있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오면 도서관 서가처럼 세워진 행거에

독특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이 걸려있다.


행거 사이사이로

딸의 치맛자락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다.

나는 무더위를 피하는 데 만족하며

아이가 옷을 고르기를 기다렸다.

오늘 사는 옷 값만큼 용돈에서 차감할 거라서

아이도 제법 신중하게 고민했다.


아이가 고른 옷은 밝은 하늘색 남방이었다.

제일 위쪽 단추를 여미면 옷깃이 약간 비틀어져 보였다.

목 뒤쪽은 마감이 허술해서 실밥이 일어나 있었다.


딸이 좋아해서 오긴 하지만 나는 이 집 옷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SPA브랜드보다 가격은 비싼데 품질은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참을 인, 참을 인을 새기며 계산대로 갔는데

앞서 말한 사단이 벌어진 것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니

덥고 습한 공기와 따가운 햇볕이 몸을 휘감았다.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

구김이 가지 않게 다시 차곡차곡 갰다.

말없이 손만 움직이는 나를

딸도 잠자코 지켜만 봤다.


대화 없이 횡단보도까지 걸었다.

아이의 마음이 불편해질까봐 입을 열었다.


"옷을 그렇게 팔면 안 되는 거야."

"왜?"

"저런 식으로 조건을 거는 건 사는 사람에게 아주 불리한 거야."

"아.."

"학생들 상대로 장사하면서 저러는 게 엄마는 화가 나."


그리고 덧붙이지 못했던 말들을

마음속으로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가게 입구에 있는 산리오 캐릭터들이 중국산 짝퉁인 걸.

타오바오에 가면 하나에 몇 백 원 하는 펜들을

몇 천 원으로 몇십 배 넘게 불려서 팔고 있다는 걸.

집게핀도, 그립톡도 다른 곳보다 더 비싸게 팔고 있다는 걸.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상황에 내가 어쩌겠는가.

싫으면 안 사면 되고, 그럼에도 좋으면 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주 고객인 걸 알면서도

불리한 구매 조항을 내걸고 있는 건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어른이 그러면 안 된다.

코 묻은 돈을 그렇게 벌면 안 된다.


집에 돌아온 딸은

어리버리해 보이는 핏의 옷을 입고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 그 가게에 또 갈

어느 친구와 갈 지를 고민하고 있다.


나도 고민을 한다.


이젠 그 가게에 가지 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딪쳐서 뭐라도 배우게끔 내버려 둬야 할까?


일단

후자를 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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