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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단상
오늘부터 1일, 그냥 지금 하자
2023.8.20.
by
하얀밤
Aug 20. 2023
"엄마, 받아쓰기하게 불러줘."
일본어 히라가나 외우기 '오늘부터 1일'을
닷새 전에 시작한 딸이
오늘 마침내
50개를 다 외웠다.
닷새 전.
넷플릭스 메인 화면을 뒤적거리던 딸이
영화를 추천해 달라했다.
나를 일본어에 빠지게 만들었던 <바람의 검심> 만화를
실사화한 영화 포스터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몇
번이나
본
영화지만,
봐도 봐도 재밌으니까,
좀 잔인하긴 하지만,
보호자의 지도 아래 보면 되니까
약간의 사심을 섞어 재생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현생을 잊고
영화화된 시리즈 다섯 편을 정주행 했다.
다섯 번째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딸은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며
바로 히라가나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미뤄둔 냉장고 청소를 해야 했지만
주말에 힘을 쓰면 평일에 힘들 것 같아 소파에 누웠었다
.
그리고 닷새 후인
오늘
우리집 냉장고는 여전히 청소를 기다리고 있고
히라가나는 딸의 머릿속에 안착되었다.
아이에게 받아쓰기 문제를 내주며
나와 카풀을 하는 동료를 떠올렸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녀는 장롱면허 소유자다.
카풀과 대중교통을 병행하는 힘든 출퇴근을 하면서도
운전이 무섭다고
'1일째'를 3년 동안 미루는 중이다.
그녀의 운전과
나의 냉장고 청소가 미뤄지는 이유는
'생각이 많아서
'
이다.
실현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오른다.
살아온 장면들이 복합적으로 만든
지나치게 명료한 미래형 이미지들
.
딸의
머릿속은 아직 깨끗하다.
미래형 이미지를 만들 재료가 없다.
히라가나가 외우기 어렵게 생겼다느니,
이걸 외워서 자격시험까지 쳐야 하냐느니,
힘들 게 외운 걸 어떻게 써먹을 거냐느니 등의
쓸데없는 미래형 두려움이 없다.
쓸데없는 두려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닷새가
이렇게나 다르다.
오늘 나는
이렇게 두꺼운 걸 언제 읽냐며 두려워하던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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