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황상민 <독립연습>을 읽고

by 하얀밤


약 2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찾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 2년 전의 쓴 독후감을 꺼내 보았습니다. 겉핥기식으로 자신을 돌아보던, 아니 돌아보았다고 믿었던 때 쓴 독후감을 읽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안 것이 아니라 안다고 믿는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림자의 춤을 내 몸이 추는 춤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어설픈 믿음이라는 희뿌연 빛 아래서 추었던 춤이 애처롭습니다.

그래도 그때를 안쓰러이 볼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있어 다행입니다. 2년 여간의 지난한 자기 찾기의 과정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바른 이정표도 얻었습니다.


문제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분명한 길로 선뜻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치 않은 고질적인 '한국 사람 마인드'가 발을 떼기 힘들게 합니다. 길을 알았으면 가야 하는데 이놈의 발은 왜이리 굳건히 바닥에 붙어있는지요.

나아갈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할수록 내 얼굴은 선명하게 비친다. 그러니 나를 어떻게 찾느냐고 울부짖는 대신 마음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면 그뿐이다. '나'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독립연습> p5
가시밭길 끝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나를 발견하는 맛이 심하게 쓰긴 해도 분명 가치있는 일이므로.
<독립연습> p15
외로움이 나를 쓰러뜨릴지, 내가 외로움 덕분에 성숙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독립연습> p63



2년여 간의 시간은 진정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너무 외로웠지만 그래도 버텼습니다. 외로움이라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양 팔을 휘휘 저어 이정표를 간절히 찾았습니다. 살고 싶어서 찾았습니다.

포기하기에는 살아온 날들이 너무 아까웠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나여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마음을 다해 노력을 했음에도 바꿀 수 없다면 그것 때문에 고민하기보다 받아들이거나 털어버릴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
<독립연습>p101


누구에게나 받아들이든 털어버리든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관련됐냐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한 쪽을 선택해야 함은 같습니다.

선택지 두 가지를 들고 어느 하나도 버리지 못하겠다고 쥐고 있으면 오도 가도 못 한 채 정체됩니다. 선택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저도 지금 그런 상황이니까요.

너무나 싫고 너무나 미운 일을, 버리지도 털어버리지도 못해서 바른 이정표를 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작동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주면 트라우마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트라우마의 덫에 걸려 모든 문제 앞에서 허우적거릴 이유가 없다.
<독립연습>p107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하나의 핑곗거리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일'이 나를 자꾸 넘어뜨린다고, 이미 벌어진 그 일을 내가 어찌하겠냐고 무기력하게 반응하는 것에 이젠 지칩니다.

기억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에겐 '일기장을 들킨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뭐든 글로 푸는 성향을 타고 났기에 어릴 적부터 힘들 때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일기장에 쏟아냈었습니다. 죽어도 묻고 가고 싶었던 그 일기들을 누군가가 저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는 기억은 수시로 저를 괴롭힙니다. 어딘가에 글을 쓰는 것이 아직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이미 과거의 것이고 지금의 저에겐 얼마든지 자신을 표현할 권리와 자유가 있음을 압니다.

기억이 작동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씁니다. 쓰면 쓸수록 기억은 힘을 잃습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도 ''이고, 그 환경에서 날개를 펴고 살아갈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내게 있는 무언가를 쓰지 않고 버려두었을 때 아무런 삶의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로 그 '무언가'가 내 재능이다.
<독립연습>p247


저는 글을 쓰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면 희망을 잃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희망을 잃었었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음껏 쓰고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제가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도 나를 독립시켜주지 않는다. 독립은 스스로 하는 거다. 내가 선언하고 내 발로 걸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내 문제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문제 뒤에 숨은 내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나를 만나야 한다. 나를 만나야 비로소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독립연습>p264



책의 부제가 <서른이 넘으면 자기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입니다. 저자는 자신도 서른 즈음에 힘들었다고 위로합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저에게도 위로로 다가옵니다.



자신을 찾는 데는 늦은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손녀인 제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사시면서 돌아가시기 전 의식을 잃을 때까지 엄마 탓을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믿음은 바위처럼 굳건해서 본인과 죄없는 엄마를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저까지요.

나이가 지긋하도록 남탓만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여 자신과 타인을 옥죄는 사람이 지금도 너무나 많습니다.

눈을 감으면 선연하게 떠오르는 찡그린 얼굴의 사람들,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죽기 전엔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았다고,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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