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읽고 싶은 나에게

황상민, 이승아 <마음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를 읽고

by 하얀밤

황상민 박사님의 신간을 읽었습니다.

<마음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책입니다.

'이게 마음에 들어, 내 마음 나도 몰라, 내가 마음먹었거든' 등 '마음'이 들어가는 말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영혼', '정신', 혹은 '컨디션'을 대체하는 단어로 언제나 우리 곁에서 쓰일 준비를 하고 있는 친근한 이 단어가 가진 진짜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길래, '아픈' 걸까요.


저는 마음이 자주 '아픕니다'. 머리처럼, 팔처럼 마치 신체 기관의 한 부분인 듯이 아픕니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배경지식을 통해 그 말을 이해합니다. '마음'에 대한 배경지식은 대체로 비슷해서 위로하는 법도, 달래주는 법도 비슷하지요. 그러나 왜 좋다는 그 방법들이 마음을 진정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위로하고 달래주지 못하는 걸까요. 잠시 지나가는 상쾌한 바람처럼 기분만 환기시키는 그 방법들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달콤한 사탕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머리가 다시 복잡해지네요.

이런 말이 제 마음속에서, 주변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뭘 그렇게 따져, 힘들면 참는 거고,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가게 되어있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유명한 말도 몰라?'


알지요, 알아요.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정말 위로를 주던가요? 왜 나에겐 '지나가지' 않는 건지, 수시로 되돌아와 마치 처음 맞닥뜨린 것처럼 눈앞을 깜깜하게 하는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나는 항상 같은 문제로 아파하는 건지'.

아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벗어날 수 없는 문제라면 실체를 알고 싶습니다. 두려워 마지않던 것도 실체를 알고 나면 대응할 용기가 나니까요.



'마음의 정체'를 알기 위해 이 책을 펼쳤습니다.

황상민 박사님의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고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꾸준히 접해 왔기에 '마음'에 대해서나 WPI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저의 착각과 오만을 깊이 반성했습니다. '마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다음을 안다고 자만한 저였기에 두 배 세 배 아팠던 건지도 모릅니다. 땅을 다지지도 않고 집을 짓고는 옥상에 올라가 경치가 좋다고 말하는 꿈을 꾼 기분이었습니다. 실제의 저는 기초 공사를 하지 않은지도 모른 채, 어떤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허공에 앉아만 있었습니다. 집 또한 당연히 허상이었지요. 모자라고 부족한 제 모습을 깨닫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저는 이런 괴로움을 사랑합니다. 눈앞에 제가 보지 못하는 벽이 있음을, 이끌어 짚어주며 실체를 알게 해주는 이런 손길을 사랑합니다.



책에서는 마음을 '인간 개개인이 가진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믿고 있느냐, 내 상황을 어떠하다고 믿고 있느냐, 내 욕망이 무엇이라고 믿고 있느냐, 그리고 이 욕망을 누가 실현시켜주기를 바라느냐. 이런 것들의 총체가 마음입니다. 이 믿음의 창을 통해 나는 나를 보고, 세상을 봅니다. 창의 모양에 따라 보이는 부분이 다르고, 유리창의 색에 따라 보이는 색도 달라집니다. 내 마음이 '아프다면' 이 믿음을 점검하고, 믿음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참 쉽죠?'라는 문장이 다음에 와야 할 것처럼 간단해 보이지요. 그러나 나의 '믿음'은 내 삶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기에 내가 무엇을 믿고 있다는 것조차 스스로 파악하기 힘듭니다. 굳건하지만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실체를 툭 건드려 무지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여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책이나 상담이겠지요.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의 '믿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다가도 멍하게 천장을 보며 책의 내용을 저에게 적용해 보았어요. 저의 믿음을 파악하는 것은 개미가 하늘을 보는 것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하늘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는 개미가 되었어요.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이 어떤 이슈나 주제와 관련된 자신의 믿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한 개인의 마음은 수없이 다양한 이슈나 주제에 대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요.

<마음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 p21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겐 '하늘을 보는' 과정입니다. 여러 이슈나 주제에 대한 저의 믿음을 표현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 을 통해 저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내가 무엇을 믿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자신의 '마음 읽기', '욕망의 정체 파악'은 바로 이런 경우 필요하답니다. 목표가 있더라도, 왜 자신이 그 목표를 위해 무작정, 아니 절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목표인데 누가 나 대신에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나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 분명히 알아야 한답니다.

<마음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 p132
진짜 내 마음을 알아갈 때, 행동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지요. 만들어진 정답을 좇을 때에는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마음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 p174


글을 쓰고 싶고,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고 표현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자꾸만 게을러지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어떤 '진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정말로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싶은 걸까요? 이 부분을 알아가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간절히 바란다고 말은 하면서 왜 주저하고 있는 건지, 어떤 마음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진짜 제 마음을 알아서 기쁜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혼자서 읽고 쓰기만 했을 때보다 공개적인 플랫폼에 글을 쓰고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으면서 저는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길이 저에게 맞는 길임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이어가고, 힘을 얻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저만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과제를 한아름 안아 든 학생이 된 것 같습니다. 버겁긴 해도 과제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왜 아픈지, 내 마음이 어떤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의 욕망에 맞춰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이 과제를 결코 놓지 않을 것입니다.

꼭 해결하고 싶습니다.





황상민 박사님의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성찰을 한 후에 접하냐에 따라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달라집니다. 신간인 이번 책에도 띠지가 책이 두툼해질 정도로 붙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필사하며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을 보낸 후, 한참 후에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땐 또 어떤 부분에서 멈칫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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