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공부' 가 주는 진짜 '위로'

'곽아람 <공부의 위로>'를 읽고

by 하얀밤


이 책은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저에게 20년 전의 대학생활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작가는 저와 연배도 비슷해서 작가가 말하는 시대적 배경이 무척 친숙합니다. 비슷한 시기임에도 작가와 저는 너무도 다른 대학 생활을 했지만요.



작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를 나왔고 저는 집과 가까운 지방대를 나왔습니다. 또, 작가는 대학생활을 지금의 자신을 버티게 하는 뿌리를 마련한 곳으로 여기고 있고, 저는 인생에서 가장 부담 없이 즐기고 놀았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강의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 땀구멍까지 보일 것 같은 위치에서 열심히 필기를 하고 질문도 하던, 저와는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학생들 중 하나가 자라서 이 책을 쓴 것 같았습니다. 강의실 뒷문 가까이 앉아 있다가 지루하면 하품을 하고, 2시간 연강일 때는 뒷문가에서 손짓하는 선배나 동기의 부름에 적극 응하며 조용히 가방을 싸서 나가던 저는 그 학생들의 마음속이 궁금했던 것도 같습니다. PC방이나 당구장에 도착하면 모든 걸 잊고 놀았지만요.


그런 저도 시험은 열심히 쳤습니다. 중간 기말고사 때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시험 범위 때문에 고3 때도 안 해본 밤샘을 하다가 건조한 눈에서 렌즈가 튀어나가는 기현상을 겪기도 하면서요. 와닿지 않는 지식들을 단기간에 머릿속에 꾹꾹 욱여넣고, A3시험지 양면에 토해내듯 뱉고 나면 공부 내용은 시험 부담과 함께 머릿속에서 서서히 휘발되었습니다. 학점이 확정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대학 '공부'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학점을 위한 것, 이해가지 않아도 일단 외우고 봐야 하는 것, 참아야 하는 것. 그러니까 '힘든 것'.



작가는 대학 '공부'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교수님을 믿고 따랐고, 교재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실망과 배신감을 가지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걸 다 해결해준다던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할 수 있는 자유 외에는 눈에 띄게 얻은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만난 교수님들은 이 세상에 발을 담그지 않는 신선들처럼 지냈습니다. 취업과 결혼, 사회생활이라는 인생의 큰 과제들을 해결한 자의 여유를 한껏 누리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틀린 생각도 아닙니다.) 졸업과 동시에 큰 시험을 쳐야 하고 그 시험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학생의 사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그들,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1970년대 중국 정치사 책을 제본해서 가져오라는 말을 뻔뻔하게 하던 그들, 구름 위를 걷듯 우아하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대해 읊조리고, 수업 시간에 졸고 딴생각을 해도 족보를 구해 달달 외워 시험지에 옮겨 적으면 높은 학점을 주던 그들. 저는 일찌감치 대학에서 하는 '공부'의 민낯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하고(출석 부르는 시간에 대답하고, 혹은 대리출석에 성공하고), 족보를 구해 외우고, 외운 것을 시험에 적는다.' 이것이 대학에서 학생이 하는 '공부'였습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제목인 <공부의 위로>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목 속 '공부'가 대학 때 했던 그 '공부'를 가리키는 걸 알고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위로가 된다고? 사회생활을 하며 가끔씩 그리워하게 되는 대학 시절의 무해한 천진으로 위로받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읽다 보니 그게 아닌 겁니다. 작가는 정말로 대학 시절에 열심히 배우려 애썼습니다. 작가가 나온 대학이 서울대라서 대학 교육의 질이 월등히 높았던 걸까요?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이나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더 성실하게 지낸 건 아닐까요. 혹은 작가가 어떤 사람에게든 환경에서든 배울 점을 찾으려 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 다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를 다르게 살아온 그녀와 마주 앉아 차 한 잔 하며 지나온 시간에 대한 소회를 나누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점이 많았지만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혼자 책 읽기를 좋아하고 생각 곱씹기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찌르르 흐르는 공감. 그게 얼마나 소중했던지요.


간직하고 싶어 필사한 문장이 많지만 그중 특히 마음을 울린 두 구절을 소개합니다.

생각하는 만큼 인간은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다른 부위를 흔들어 깨워 억지로라도 열심히 쓰다 보면, 우수함을 타고난 이들만큼은 못해도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어느 정도 문리가 트이게 된다. 뇌도 근육이라 잠들어 있던 부분을 인식하고 단련하면 힘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곽아람 <공부의 위로> p131

뇌가 단련되는 느낌은 한 가지에 집중해서 시간을 투자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한 분야에 집중해 본 그녀는 진심을 다해 저 구절을 썼을 것입니다. 길 없는 숲에 길을 내는 기분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고, 투자한 시간만큼 단단해지는 길을 두 발로 느끼고, 마침내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 길을 걷고 즐기는 것.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을 흔들고, 깨워본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Sapiens nihil facit invitus nihil iratus.
현명한 이는 어떤 것도 마지못해 하거나 분노한 채로 하지 않는다.

곽아람 <공부의 위로> p308

작가가 라틴어 수업 시간에 배운 문장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제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눈물이 찔끔 날 뻔했습니다. 이 문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작가도 사연이 있겠구나 싶어서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이런 보석 같은 문장을 얻게 되는가 봅니다.



이 책은 독서클럽 회원이 함께 읽자고 한 책입니다. 저라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제목을 보고 선택했더라도 몇 장 읽다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그냥 덮었을지도 모를 책인데 함께 읽는 책이다 보니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시간 여행을 했습니다. 40대의 제가 학교 버스를 기다리며 캠퍼스 안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20살의 저를 바라봤습니다. 전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경사진 캠퍼스에서 뾰족구두를 신고 걷다가 발이 아파 과감하게 몇 백 원을 투자하여 버스를 타겠다고 결심했던 나. 머리는 유행에 따라 밝은 색으로 염색하고, 한 팔엔 전공 서적을 끼고, 머릿속으로는 '오늘 저녁엔 친구랑 어디서 술을 마실까. 안주가 맛있는 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나 말입니다. 그때의 저는 고3 때까지 억지로 했던 수학과 물리에서 벗어났음에 기뻐하고 앞으로 다가올 무거운 취업 부담은 애써 다음으로 미루고 있었습니다. 고시 준비에 찌든 선배들의 모습이 곧 제 모습이 될 것임을 알았지만 2학년까지만 놀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했었습니다.


작가는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지만 저는 대학에서 별로 배운 것이 없습니다. 진짜 '공부'는 사회생활과 결혼, 출산을 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직장, 가정, 육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지(知)'들을 주워 모았습니다.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웠던 것들이 어느샌가 보석이 되어있었고, 보석이라 생각하며 주웠던 것이 돌멩이보다 못한 존재로 되어있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보석인지를 처음부터 알고자 하는 것보다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 현재 제가 얻은 최고의 배움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교과서도 참고서도 없는 배울 거리가 산재해있고, 배우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내가 되리라고 믿는 것이 저에게 진정한 '공부의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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