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임에 빠진 아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 1

'황상민, 김명주 <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를 읽고

by 하얀밤

"둥이들아, 이번 추석 선물로 뭐 받고 싶니?"

쭈뼛거리며 딸이 대답합니다.

"젬.."

옆에 있던 아들은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800로벅스!"


젬, 로벅스는 각각 <제페토>와 <로블록스>에서 사용되는 현금 같은 것입니다. 한 마디로 현질을 해달라는 것이죠. 이제는 젬, 로벅스가 저에게도 익숙한 개념이 되었지만 처음 저 요구를 들었을 때에는 '현.질.'이라는 기분 나쁜 단어만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들으면 안 될 단어를 들은 것 같아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게임을 하게 해 준 것만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서 현질을 당당하게 요구해?!!"

라고 당장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꾹 참고 도대체 너희들이 하는 게 뭔지 알아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애들의 화면을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제페토>와 <로블록스>가 바로 요즘 뜨는 '메타버스'였습니다. 아이들은 사이버 세상에서 자신의 캐릭터와 집을 꾸미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꾸미기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캐릭터와 집 꾸미기에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며 제 20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예쁜 바닥과 벽지와 귀여운 소품들로 가득하던 '마이룸'엔 누가 들어도 내 미니홈피란 걸 알 수 있을(것이라고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BGM이 흘렀습니다. 손톱만큼 작은 '미니미'에 입힐 손톱보다 작은 상의와 하의를 고를 때, 픽셀로 이루어진 그것들에 얼마나 공을 들였던지요. 친구의 마이룸에 내 미니미와 친구의 미니미를 나란히 배치할 때의 쾌감이란! 현실 속 내 방보다 더 내 방 같은 마이룸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찐 우정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너구리>, <고인돌>, <금도끼> 같은 게임을 동생들과 신나게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고인돌> 속 거인의 커다란 방망이질을 피하며 타이밍을 잘 잡아 거인의 커다란 엄지발가락을 방망이로 때릴 때, 그리고 마침내 거인이 쓰러질 때 뒤에서 환호성을 지르던 동생들. <금도끼> 속 캐릭터를 하나씩 맡아서 하루에 한 번씩 끝판 대장을 깨던 우리. 이제는 모두 40대가 된 우리가 미니홈피를 현금으로 산 도토리로 꾸몄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들을 했다고 지금 제대로 못 살고 있냐면, 음 글쎄요. 이쯤에선 그 경험들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인터넷과 컴퓨터와 게임에 대해 좋은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이 심리도 참 희한합니다.


긍정적인 경험을 분명히 스스로 가지고 있는데도,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데도 홍시라 말 못 하는 이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유행하는 게임을 하는 것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거라고 쿨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 마음 말이죠. 이제는 이 마음의 정체를 알아야만 합니다. 내 아이가 눈앞에서 컴퓨터로, 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게임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 모습을 보는 제가 너무 불편하니까요. 마지못해 허락을 해주기는 하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불안감. 이 기분 나쁜 감정들의 발원지가 정말로 나 자신일까요? 사람들이 다 같이 옳다고 믿고 있으나 검증되지 않은 통념에 따른 건 아닐까요?


궁금하고 답답하면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더 빨리 현명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길잡이를 찾는 간절함이 <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황상민 박사님이 공저하신 책으로 지금은 절판되어 중고로 밖에 구할 수 없는 책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느 구석에 박혀있는지 모를 중고책도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해서 구할 수 있습니다. 몇 번의 검색으로 일주일도 되지 않아 책을 받아보았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있다가 컴퓨터를 활용한 인터넷 검색으로 나에게 온 책




간단히 말해 그는 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땅거미가 질 때부터 동이 틀 때까지의 밤 시간을 오로지 독서만 하면서 보냈고,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의 낮 시간에도 독서만 하면서 보냈다. 이처럼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독서에만 열중한 탓으로 결국 그의 뇌는 빈사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마침에 이성의 능력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읽은 모든 것 ㅡ즉 마법, 싸움, 도전, 부상, 구애, 사랑, 고통, 그 밖의 온갖 터무니없는 상념들ㅡ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그는 상상의 세계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자신이 읽은 모든 환상적 요소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곧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모험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편력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 책에서 인용한 <돈키호테>의 일부입니다. 책에 우호적인 감정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이 글귀는 큰 위화감을 느끼게 합니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이 선천적으로 이상한 성격을 타고 난 건 아닐까, 아니면 주인공이 읽은 책이 '일반적인 책'과 많이 다른 이상한 책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부분에 대해 저자가 한 말을 읽어봅니다.


이 이야기는 인쇄술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기 전의 약 5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인쇄술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은 정말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아직 낯선 애물단지 듯이 당시 책을 읽는다는 게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시절의 책이란 구하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보통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것조차 위험한 일로 비춰졌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사람 가령, 신부나 학자와 같은 부류가 읽었던 것이니까요. 그래서 책은 사람을 현실과 소설도 구분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것으로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여러분들이 사이버 세상이나 인터넷 게임 세상에 갖고 있는 적대감과 같은 경우일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인터넷에 중독되었다'라고 걱정하는 것은 사이버 세상이나 인터넷 게임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인쇄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사람들이 책에 대하여 가졌던 느낌처럼 말입니다.

황상민, 김명주 <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 p180


이 부분이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에 적대감을 가진 시기가 있었다고? (네, 저의 세계사 지식은 습자지처럼 얇습니다.) 인쇄술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에 사람들이 책을 향해 보인 감정이 지금 우리가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에게 가지는 감정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같은 대상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니요. 알지 못함으로 인한 두려움과 낯섦의 시선, 그리고 그 가치를 알고 난 후의 시선. 시선만 달라질 뿐 대상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대상이 문제일까요, 시선이 문제일까요.


이제는 아이들이 접하는 사이버 세상에 대해 생각을 좀 바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 부모 세대가 컴퓨터와 인터넷, 게임을 바라보는 눈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닐까요. 실제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련하고 아름답고 좋았던 순간들이 많은데 말이죠. 그 경험들을 긍정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이중성이 더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고인돌> 게임 속 거인의 엄지발가락을 때릴 타이밍을 잡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끝판 대장이 나올 시점을 미리 감지하고 화면 가운데로 오기 전에 끝으로 몰아 순식간에 수십 대를 때리는 전략을 짜게 된 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원인 분석이 있었고, 생각했던 전략이 실제로 먹히는 걸 보며 짜릿한 성공을 체험했습니다. 용돈을 아껴 산 도토리를 최대한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해 갖고 싶은 것의 순위를 매기고 가격비교를 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했습니다. 온통 영어 투성이인 DOS화면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 사전을 펼쳤고, 컴퓨터를 움직이기 위해 영어로 된 명령어를 암기했습니다. 명령어를 치면서 자연스레 키보드 자판을 익혔고, 사람들과 채팅까지 하다 보니 타자수가 빠를 땐 800타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타자 속도가 빨라지니 손글씨보다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는 게 수월하게 느껴졌고 표나 그림을 삽입하며 문서를 예쁘게 꾸미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가 '엑셀'이라는 프로그램이 참 좋다고 들었다고 하셔서 무턱대고 어둠의 경로로 깔았던 제 인생 최초의 '엑셀'은 익숙한 친구가 되어 지금도 제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실은 좋았다'라고 당당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제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아들은 식탁에서 <로블록스>를, 딸은 소파에서 <제페토>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 나 71 킬이야. 사람들이 나보고 핵 이래. 이거 최고의 칭찬이야!"

아들이 자랑을 합니다. 손이 빨라 게임을 너무 잘하는 바람에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불법 프로그램을 쓰는 게 아니냐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자기가 잘하는 거라고 자랑하는 거죠. 아들의 뒷모습에서 발가락이 퉁퉁 부은 거인이 쓰러지는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던 30년 전의 저와 동생들이 떠오릅니다. 아들이 저 경지에 이르게 된 건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진 게 아닌 걸 압니다. 게임만 하다 보면 몸을 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염려되는 부분인데 점심 먹고 친구와 밖에서 축구를 할 것을 알기에 그냥 둡니다. 최근에는 클라이밍에도 관심이 늘어서 어제는 야외 암벽장에서 손바닥이 까지도록 암벽을 타고 왔습니다. 반창고를 손바닥에 덕지덕지 붙이고도 게임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게임에 대한 제 마음의 정체를 알고 나니 아들을 보는 제 마음도 한결 편해졌습니다.


"엄마 나 2.0K야. 추천 멤버에 뜨고 나서 자꾸 팔로워가 늘어나!"

딸도 신이 나 있습니다. 매일 자기 캐릭터를 활용하여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업로드를 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추천 멤버가 되었습니다. 뮤직 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음원을 추출하고,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사진을 구하고,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캐릭터 레이어를 복사하고, 복사한 레이어의 색상 값을 조절하여 그림자처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이제 이 아이는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영상 편집을 잘하다 보니 크루라고 부르는 그룹에 소속되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초대된 크루에서 활동하는 딸에게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와 학원 숙제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규칙 하나를 정해놓았습니다. 딸의 성향상 남에게 혼나는 것을 못 견뎌하기 때문에 규칙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놀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미래를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시대와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의 모습이 다를 것이라는 건 분명히 압니다. 지금 우리가 전문가라고 말하는 의사, 변호사들이 과연 과거 우리 부모 세대의 그분들처럼 직업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요. 부모 세대가 우리에게 그렇게나 되라고 하던 교사, 공무원은 어떻게 지내는가요. 이런 직업들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못 하겠습니다. 잘 모르면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내 생각과 판단의 결과를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아이에게 강요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책 한 권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 책에 이어 읽을 또 다른 책은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 읽은 후에 또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지 스스로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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