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임에 빠진 아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 2

'황상민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를 읽고

by 하얀밤

이 책은 앞서 리뷰한 <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의 확장판같은 책입니다. <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가 황상민, 김명주 교수님을 모시고 부모들이 게임과 인터넷에 빠진 아이들에 관한 고민을 나눈 시간의 기록이라면 이 책은 황상민 박사님이 모임을 진행하며 하셨던 이야기의 근거를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아마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한 연구를 하신 뒤 모임을 가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주제의 책을 두 권이나 허겁지겁 읽은 이유는 단연, 제 마음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게임에 푹 빠져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저 아이는 지금 사이버 세상에서 자기 살 길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라고 애써 생각해봐도 현실에서 소홀해진 것 같아 불안감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의 정체와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되면서 불편함의 크기는 이전보다 훨씬 줄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진 힘과 지식이 평소에는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 아이들의 진짜 능력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문제나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이다. 그제서야 도토리 키 재기마냥 비슷해 보이던 아이들 사이의 진짜 힘이 판가름 난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힘 '문제해결능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상황의 변화가 잦고 불투명한 시대에는 이 '문제해결능력'의 가치가 더욱 빛나며, 그 사람이 가진 강한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황상민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p33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해결능력의 중요성'은 제가 살아오며 쉴 새 없이 던진 물음에 대한 답과 닿아 있습니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인가?'라는 물음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로 구체성을 띄는 물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며 뭉툭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그것입니다. 시련과 고통은 살아 있는 동안 떼어낼 수 없으니 거기에 대응하는 용기와 지혜를 얻고 싶었습니다. 좀 더 정제된 표현으로 바꾸면 '문제해결능력'이 되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런 문제해결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은 바로 인터넷이다. 정말 아이들이 미친 듯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곳은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황상민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p33


문제해결능력을 게임에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입는 것처럼 불편하고 낯선 말입니다. 그만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컸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난 글(<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에서 제가 썼던 것처럼 게임은 저에게 좋은 추억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게임을 하며 했던 경험이 진짜인 것처럼, 저자가 말하는 게임의 장점도 분명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친듯이 몰입하여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떠올려 봅니다. 그냥 멍하게 있었다면 레벨이 올라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게임이 재미있다는 것은 그만큼 머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고, 머리를 쓰는 만큼 얻는 눈에 띄는 보상이 더 앞으로 나가가도록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게임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알코올 중독처럼 나쁜 것이 된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경험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리고 게임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게임 중독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독이 아니라 중요한 학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중독에 걸린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게임 활동이 나쁜 것이라고 추측하고 만다. 그러기에, 게임중독보다는 공부중독에 걸리기만을 소망한다. 공부중독은 자기들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니,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막연히 그랬으면 하고 바란다.

황상민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p133

이 책을 읽다보면 기존의 관념을 마구 깨부수는 듯한 문장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게임을 해 본 경험과 저자의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저도 읽기가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중독'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합니다. 특히나 공부중독이라는 말은 자석의 양극과 음극이 맞붙은 것처럼 부자연스럽네요. 하지만 목적 의식 없이 습관처럼 행하는 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게임이든 공부든 돈이든 내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의식을 해야 의미가 생깁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채팅이나 사이버 공간의 아바타에 돈을 쓰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게 맞는가 생각하게끔 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채팅은 하나의 놀이라는 것을 주지시켜 줄 필요가 있다. 가장무도회에서는 맨얼굴로 온 사람이 오히려 우스워 보이는 법이다. 그러므로 평소 엄마 아빠와 얘기하듯이 채팅에서 자신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부모 역시 채팅은 하나의 놀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도록 하자.
특히 여자 아이의 경우, 부모나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채팅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내 아이와 이런 규칙을 정해 보았다.
1. 채팅에서 처음 만난 친구는 채팅으로만 만난다.
2. 채팅에서 처음 본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 (번개를 하지 않는다.)
3. 혹시 이상한 제목의 대화방에 들어가면, 절대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
4. 학교이름이나 집주소, 전화번호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황상민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p176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아니나 다를까 딸이 질문을 해왔습니다.

"엄마, 나 제페토에서 반모자(반말모드사용자)랑 얘기를 하는데 자기가 중2래."

"남자야?"

"응."

"그런데 왜?"

"자꾸 내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물어."

"그래서 말해줬어?"

"아니."

"왜?"

"개인정보잖아."

잘했어! 우리딸! 하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줬습니다. 그러고 슬쩍 물었습니다.

"네가 몇 살인지는 말해줬어?"

"중1이랬어."

우리딸은 초등학생입니다. 이미 가면무도회의 룰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말은 않고 책에서 읽은 규칙만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사이버 세상에서의 만남은 '가면무도회'라는 비유를 들어주면서요. 제가 할 일은 중간 점검을 하는 일뿐입니다. 아이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니 술술 잘 말해줍니다. 그뿐 아니라 채팅하다가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휴대폰을 들고 저에게 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문구를 함께 만들어봅니다. 이 과정이 결국 현실 속 사람과 대면하며 나누는 대화에도 반영되겠지요.


사이버 시대에 아이가 아바타를 통해 배우는 것은 새로운 소비활동이다.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소위 말하는 인터넷 쇼핑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학습한다. 오히려 이런 학습이 제대로 되지 못한 엄마들이 인터넷 쇼핑이나 TV 홈쇼핑에서 과대 광고에 쉽게 현혹되고 충동구매를 쉽게 한다.

황상민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p187

아들에게 가끔씩 사주는 '로벅스(로블록스 게임 속의 돈)'는 최근 환율이 오르면서 구입가가 올라갔습니다. 800로벅스를 우리 돈으로 9,900원에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12,900원에 살 수 있습니다. 로벅스가 필요하다 하면 한 달 용돈에서 차감을 합니다. 차감되는 금액이 커지자 아이가 멈칫 했습니다.

"그래도 살거야?"

"3천원이나 비싸졌네."

이참에 환율의 개념도 간단하게 설명해줍니다. 미국돈이 우리돈에 반영된다는 걸 게임으로 배우고, 더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아들이 과감하게 결제를 해달라 합니다. 12,900원이 용돈에서 깎입니다. 한 달 용돈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제 안 더우니까 아이스크림 덜 사먹으면 돼."

하교길에 사먹던 아이스크림을 포기하네요. 떡볶이까지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알아서 하겠지요.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관대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편해진 제 마음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썼듯이 저는 미래를 모릅니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오로지 제 고집에서 비롯한 통제, 명확한 근거가 없는 통제들을 과감히 버리려 애씁니다. 책 속의 소제목 두 개가 제 마음을 대변합니다.


자녀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성공은 모든 삶의 문제에서 지지 않는 것.


무엇이 '성공'처럼 보일지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릴 수 없을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그 어떤 성공이든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로 기르고 싶습니다. 성공은 '모든 삶의 문제에서 지지 않는 것'이니까요.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며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을까요. 힘들어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까요.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는 아이를 묵묵히 지켜볼 수 있는 믿음의 뿌리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게임과 인터넷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저의 케케묵은 생각 따위 버리고 과감하게 받아들여 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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