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해서, 그래서 사랑스러운 나

'황상민 <독특한 게 어때서>'를 읽고

by 하얀밤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특이할까?
사랑스럽긴 한데.

제가 자신에 대해 가져온 생각입니다. 남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려 하면 어느새 지치고, 본연의 모습으로 잠시라도 돌아와야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자신에 대해 말이죠. '다름'이 '틀림'으로 취급받기 쉬운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남들과 어딘가 다르다는 걸 알고 지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닙니다.


학교 생활, 취업 준비, 결혼 생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불쑥불쑥 드러났던 저의 특이함은 저 자신조차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까? 왜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걸 집요하게 물어뜯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상대방의 성향을 왜 꼭꼭 짚고 넘어갈까? 특히나 마지막 특성은 직장 생활을 꽤 고달프게 했습니다. 윗사람에게는 의견 개진이 아니라 지적질처럼 받아들여져 왕따 아닌 왕따 같은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인지 고집인지 모를 것이 저를 지탱하게 했습니다. 버티는 제 자신이 좋았습니다.



나 자신이 사랑스러우나 때때로 두렵다.


남들과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자신을 사랑했으나, 두려운 적도 많았습니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어떠 어떠한 사람이다,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행동을 한다 같은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것이 <황상민의 심리상담소>라는 팟캐스트입니다. 황상민 박사님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연구해서 WPI 심리검사를 만들었고, 결과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혹시 자신의 타입이 궁금하신 분은 초록창에 '황상민의 심리상담소'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저는 박사님 말씀에 따르면 주어진 달란트를 주체 못 하는 M자형 인간입니다. M자형 인간이란, WPI 결과인 다섯 가지 유형(리얼리스트, 로맨티스트, 휴머니스트, 아이디얼리스트, 에이전트) 중 로맨티스트 성향과 아이디얼리스트 성향이 둘 다 높아서 프로파일이 M자 모양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감성과 이성이 둘 다 발달하여 다중이의 모습을 딱 보이기 좋은 인간형이죠.



내가 어떤 인간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WPI 검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다. 나란 인간이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려 살 수나 있기는 한 건지 혼란스럽기만 했던 머릿속이 한 번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 기분은 음... 몇 달 동안 묵혀둔 때를 목욕탕에서 빡빡 밀고 나왔을 때의 상쾌함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더 좋은 표현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무리 잘 표현해도 '너무 상쾌하다, 살 것 같다'의 파생형이겠죠.


홍수 속에 쓰레기와 함께 부유하던 나무가 드디어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린 기분이었습니다. 나를 아는 순간부터 자리를 잡고 뻗어 내린 가느다란 뿌리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며 꽤 튼튼하고 굵어졌습니다. 바람이 그치지 않는 이상 나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저도 매일, 매 순간 흔들립니다. 하지만 뿌리를 내린 채 흔들리기에 뿌리가 저를 잡아줍니다. '나는 이런 인간이니까 그런 거야'라고요. 자신을 알면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감이 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성이 풍부하고 남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맨티스트'와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기를 원하는 '아이디얼리스트' 성향의 사람이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는 건 운명인 것 같습니다.




'아이디얼리스트' 성향은 이런 사람이에요.

이 책은 '아이디얼리스트' 성향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담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이미 접한 사연들이 보입니다. 귀로 듣기만 했던 내용을 글로 보니 머리에 더 쏙쏙 들어옵니다. 제가 놓쳤던 부분들도 보이고, 새삼 활자로 접하니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 띠지가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아이디얼리스트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성향을 잘 활용해서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게 더 잘 사는 것임을 확신하게 해 준 부분이지요. '나'를 알고 나니 약점과 강점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약점보다는 강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얼리스트가 독특함을 포기하고 세상에 맞추어 살면 오히려 '시시포스의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돌을 올려야 하는 저주를 받은 시시포스의 마음처럼 자신의 일에 무의미함을 느끼고 유의미한 삶을 포기하는 저주에 걸리는 거지요. 남들처럼 직장에 출근하고 돈을 벌면서 큰 문제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삶의 의미를 내가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어떤 고통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호강에 받쳐서 요강 깨는 소리 한다는 말을 딱 듣기 좋은 시점입니다. 그래서 더 괴로워집니다. 남들은 문제가 없다는데 왜 자신에겐 문제로 느껴질까요?

나에겐 문제 상황이 맞기 때문입니다.





책 속의 촌철살인 구절을 몇 가지 남겨봅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디얼리스트들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는 일에 몰두하면서 자기기만과 왜곡의 심리에 빠지곤 합니다. 근사한 목표는 설정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계획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요. 작금의 고민이 10년이 지나도 변함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비루한 현재를 인정하는 것은 너무 지질하니까요.

황상민 <독특한 게 어때서> p67
아이디얼리스트는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자신이 있어야 행복하거든요.
아이디얼리스트는 본인이 개척한 환경을 뿌듯해합니다. 일을 저질러놓고 후회하는 것,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모습은 아이디얼리스트답지 않아요.

황상민 <독특한 게 어때서> p88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디얼리스트'라는 말이 허를 찌릅니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결기로 사는 겁니다. 하하. 말은 참 쉽죠? 하지만 아이디얼리스트가 살아남는 방법은 저것밖에 없는 걸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다짐처럼 저도 여기 또 쓰는 겁니다.


이 책은 다른 유형을 설명한 책들과 함께 시리즈로 나온 책이니 자신의 유형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은 시리즈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가볍게 시작한 책 읽기가 무거운 울림으로 남는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뭘 하든 스스로를 모르면 장애는 반복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일은 성향을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

'왜 이런 어려움을 겪는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황상민 <독특한 게 어때서>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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