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다음의 삶은 없는 것처럼

'드라마 <일타 스캔들>' 을 보며

by 하얀밤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 중입니다. 한 번 정주행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완결이 난 드라마만 보는데 아뿔싸, 이번엔 성급하게 시작해 버려서 방영 중이라는 사실을 놓쳤습니다. 현생을 잊고 정주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아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드라마의 제목은 <일타 스캔들>입니다.

건드리면 쓰러질 것처럼 마르고 예민한 일타 수학 강사와 그의 까다로운 입맛을 유일하게 만족시켜 주는 반찬집 사장 사이의 로맨스 스토리입니다. 네, 로맨스입니다. 이것도 몰랐어요. 10화가 넘어가서야 딸과 보기에 민망한 장면들이 나와서 알았습니다. 로맨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장르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해 버렸네요.


서론이 자꾸 길어지니 굳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로 빨리 넘어가겠습니다.

성적과 대학 입시에 목숨을 건 아이와 부모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드라마의 초반은 <스카이 캐슬>을 연상시켰습니다. 불꽃 튀는 경쟁 구도를 지켜보며 <스카이 캐슬>을 볼 때는 미처 구체화하지 못했던 의문을 드디어 뚜렷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왜 부모들은,
마치 대학 입학 다음의 삶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요?

대학 입학이 인생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는 걸까요?



대학 입학 이후로 몇십 년을 더 살아온 어른들이 말이죠. 대학 입학은 시작일 뿐이고, 대학 졸업조차 진짜 어른 세계로 들어오는 입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어른들이 말이에요.


친정 엄마를 치료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돌아가신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시내 중심가의 핫한 곳에서 잘 나가시던 그분이 왜 스스로 생을 저버렸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었던 의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학에 입학했다가 적응을 못해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도, 최연소로 7급 공무원에 합격해서 방송까지 나왔던 사람이 마음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 생을 포기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직업은 하나의 페르소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직업인의 얼굴을 하거나, 가족 안에서 특정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모두 내가 만든 가면 즉, 페로소나들입니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모른 채 가면을 바꿔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만과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색한 가면 아래에서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달해 다 포기하고 싶게 되지 않을까요.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는 더 놀라운 점은 경쟁 구도로 아이를 밀어 넣는 부모들 본인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아이가 미쳐갈 때 부모도 같이 미쳐가면서 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지. 의사인 자신이, 변호사인 자신이 남몰래 아픈 가슴을 쥐어뜯으면서도 왜 아이를 좋은 대학으로 밀어 넣으려 하는 건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명예로운 직업이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바로 본인인데요.


마음이 많이 무거워질 때 즈음 드라마가 급격히 로맨스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전도연은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네요. 억지로 꾸미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편안함을 느낍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을 비로소 찾은 일타 강사의 미소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극의 초반에 나왔던 아이들의 고통도 희미해집니다.

네, 이 드라마는 로맨스 드라마예요.


오늘 밤, 12화가 방송됩니다.

11화가 새로운 긴장 구도를 보이며 끝났었기에 본방 사수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다시 시작된 긴장되는 상황은 시청자가 로맨스 스토리로 잊고 있던 슬픈 현실을 돌아보게 할 것 같습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던 부모와, 의도하지 않게 부모의 잘못에 엮이게 된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과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잔인한 것을 알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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