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만든 워라밸

2023.3.29.

by 하얀밤

퇴근 후엔 칼로 무 자르듯 일을 끊어내는 것이

워라밸이라 생각했었다.

칼이 무딘 것인지,

무가 너무 길었던 것인지,

직장일은 퇴근 후에도 잊기 힘들었다.


'워라밸을 찾아야 해.'

'퇴근 후엔 일을 잊어야지.'

다짐하면서도 일을 싸들고 퇴근하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보는 서류들은 더 꼴 보기 싫었다.

내가 패배자라는 증거 같았다.


그렇게

1년이,

2년이,

10년이 훌쩍 넘었다.


10년이 넘은 즈음 언젠가부터,

일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

서류들 속 단어와 문장들이 낯설지 않아 졌다.

퇴근 전까지 일을 마치지 못하면

저녁을 먹고 TV가 틀어진 거실 구석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다가 결재를 하고

잠깐 일어나 커피를 내려와 문서를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를 익숙하게 바라보고

우리 집 속에 내 일이 녹아들었다.

일이 일상에 스며들면서

나에게 진정한 워라밸이 왔다.

낯설고 하기 싫은 일들도 익숙함이라는 무기가

어떻게든 해내게 만들었고

그렇게 성공경험이 쌓였다.


내 적성이 아니라 생각했던 일이

익숙해지니

좋아지고,

좋아지니

이게 적성인가 싶다.


이 변화는 봄날 꽃봉오리 터지듯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꽃봉오리로 맺힌 순간을 잘 견디면

어느 순간 반드시 핀다.


꽃봉오리인 채로 떨어져 나가는 젊은이들이

진짜 자신만의 워라밸을 찾는 순간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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