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의 힘

2023.4.10.

by 하얀밤


어느 날, 상관이 나를 불렀다.


"모임 하나 만들어서 이끌어주세요."


그가 내민 공문은

얼마 전 내가 우리 부서로 접수했던 공문으로

업무 능력을 향상하려는 모임을 만들면

상위 기관에서 예산을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청하겠지 하고

공람만 걸어놓고 잊고 있었는데.


그가 내민 공문엔

자발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강조되어 있었다.

그 문구만큼 위선적인 게 없었다.

그래서 픽, 코웃음도 쳤던 것 같은데.


그가 공문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돌려서 말 못 해요.

이거 해주면 나 성과급 매길 때 유리해져요."


올해 새로 부임한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빤히 쳐다봤다.

직설적인 시원한 화법만큼

두 가지 마음 없는 담백한 두 눈동자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라고 했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말이죠. 이 자리에서 누릴 권리는 누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내 힘이 닿는 한 들어주고 싶고요."


권리를 누리면서도 아닌 척,

지시만 하고 귀를 닫는 관리자 밑에서

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중간관리자가 된 이후로

딱 반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했던 나는,

마치 내 생각을 읊는 듯한 그의 말을 듣고

아,

이 사람을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모임, 한 번 해보지 뭐.

하다 보면 뭐 하나라도 배우는 게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봄아, 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