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삶의 진짜 과제

2023.4.11.

by 하얀밤


오늘은 직장 사람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 날이다.

예전에는 회식 한 번 할라치면

친정엄마에게 연락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를 돌볼 인력을 찾기에 바빴는데

이번엔 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 날을 맞이했다.


"오늘 엄마 늦게 오는데. 너네 저녁 어떡할래?"

"우리가 알아서 먹을게."

"그래, 이상한 거 사 먹지 말고. 밥 종류로 먹어."


힘주지 않은, 애쓰지 않은 대화를 하고 나선

평소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자각한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눈가가 시큰해졌다.


애들이 이렇게나 컸다니.


나에겐 애들이 한창 어릴 때 찍은

내 사진이 없다.

그땐 모습을 보는 게 싫어

거울도 멀리했었다.

대충 묶은 머리, 뿌연 안경, 뾰루지가 방치된 얼굴,

목 늘어진 티, 무릎 나온 바지.

너무 싫었다.

아이들 사진은 앨범을 몇 권이나 만들 정도로 찍었지만

우연하게라도 내가 찍히면 지웠다.

희귀 멸종동물처럼 몇 장면 속에 남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늙어 보인다.


많이 참았지.

많이 울었지.

많이 힘들었지.

엄마라는 단어의 무게가 그토록 무거운 줄 알았더라면,

아니,

알았더라면 겁쟁이였던 나는 진즉에 도망갔을 거다.


도망 못 치고

도망 안 가고

부딪쳤더니

"엄마, 맛있게 먹고 와~" 라며 손을 흔드는

두 아이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새벽까지 있다 와도 된다며 눈을 찡긋하는 딸은

알고 있을까.

학원 다녀오는 길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식당에 들어와 국밥을 먹고 있다는 카톡을 보낸 아들은

알고 있을까.

엄마의 지난 시간을,

엄마가 피워낸 꽃들이 너희들임을.


너무나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잘 커줬으니

나는 이제

내 삶을 열심히 살 일만 남았다.





아이들 어릴 적

내 사진을 남겨놓았으면 좋았을 걸.

그땐 또 그때대로

빛났을 텐데.

내 빛이

아이들을 키운 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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