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힘

2023.4.12.

by 하얀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1. 가방을 내려놓고

2. 어질러진 소파를 정리하고

3. 의자들을 테이블이나 침대 위로 올리고

4.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5. 베란다 바닥에 있는 세탁물을 분류하고

6. 세탁기를 돌리고

7. 아이가 오기 전 저녁을 준비하고

8. 아이가 오면 저녁을 먹고

9. 벗어놓은 외투들은 스타일러에 돌리고

10. 설거지를 하고

11.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12. 청소가 끝난 로봇청소기 먼지통을 정리하고

13. 세탁이 끝난 옷들을 건조기에 넣거나 널고

14. 카펫 먼지를 돌돌이로 밀고

15. 샤워를 하고

16. 시시덕거릴 수 있는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말리고

17. 아이 숙제를 봐주고

18. 책을 읽는다.(18번은 못 때도 있지만)


눈에 선한 내 퇴근 후 루틴이다.

복직 초기엔 6번까지만 해도 종아리가 아팠고

16번쯤 할 때는 꾸벅꾸벅 졸았다.

아픈 발바닥을 문지르며

이러다 수명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복직 3년 차.

18번까지 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무엇보다 체력도 남는다.


나는 이것을 루틴의 힘이라 생각한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았던 것들도 몸에 익으면

어느 순간 내 시간의 일부가 된다.

운전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듯이

루틴 속에서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고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와 대화도 수 있게 된다.


루틴이 몸에 익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1년은 필요한 것 같다.

귀찮다고 뛰어넘지 않고 눈 질끈 감고 해내어

18번까지 해내는 내가 자랑스럽다.

이제는 19번, 20번까지도 가능해 보인다.


몸의 고단함은

물리적인 움직임에 준하지 않는 걸

이제는 아니까

루틴 추가도 올해 말 즈음이면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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