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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준현 Apr 26. 2020

11. 나의 외국계 기업 적응기

90일간의 허니문. 온보딩 기간의 기억

2016년 가을 서너 번의 면접 끝에 한국오라클에 입사했다. 입사 전 약 2주 간 여행을 다녀오며 재충전할 시간을 갖고 11월 21일 월요일 첫 출근을 했다.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입사 첫날은 설레는 법. 어떤 일과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며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아셈타워로 향했다. 긴장해서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서 지각할 뻔한 건 안 비밀..




외국계 기업에서 통상 입사 후 3개월을 온보딩 기간(onboarding period)이라 한다. 이 기간 동안 회사는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새로 합류한 사람이 조직의 문화와 업무를 빠르게 익히고 적응하도록 돕는다. 회사와 입사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자 서로에 대한 기대치와 희망이 최고조인 때로 허니문 기간(honeymoon period)라고도 불리는데, 돌이켜보면 추억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니 허니문 기간이라는 말이 참 적절한 것 같다.


온보딩 기간 동안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한국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기업을 하나의 특성으로 일반화할 수 없지만, 내가 경험했던 외국계 기업은 신입보다 경력직을 많이 뽑았다. 경력직으로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 이전 회사에서 성과를 인정받던 이들이 많기에 입사 초반부터 본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경우를 이따금 본다. 그러나 입사하자마자 성과를 내는 것은 드라마에나 존재할 법한 일이고 현실에서 일어나긴 힘들다. 회사조차 이런 기적을 기대하지 않기에 온보딩 기간 동안 개인에게 별도 타겟을 주지 않는다.

온보딩 기간 동안에는 성과를 내는 것에 급급하거나 초조해하기보다, 회사와 업무를 이해하고 조직의 일원으로 적응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잡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세웠던 목표는 아래와 같다.

첫 달: 이해 (Understanding)
회사, 제품, 고객, 시장 등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하고 전문 영업이 가능하도록 기반 다지기

둘째 달: 최적화 (Optimization)
나만의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수주 확률 70% 이상인 파이프라인 4개 만들기

셋째 달: 계약 성사 (Closing)
2개 법인 수주

나의 30-60-90 Day plan의 일부. 특별히 독자들에게 공유합니다 :)

업계 / 영업 용어가 다소 섞여있으나 그래프로 나타내면 위와 같다. 입사 전 이 같은 계획을 세울 때는 영업 기간(sales cycle)을 고려하지 못하여 90일 안에 두 개 법인을 수주할 것이라고 계산했었는데, 첫 수주를 한 건 입사 후 반년이 지나서였다. OTL 그래도 여기서 수주 빼고 얼추 비슷하게 갔으니 온보딩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원활한 온보딩을 도왔던 요소들

회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오라클의 문화와 업무에 적응하고 녹아들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덕분에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조직에 대한 결속감을 빠르게 가질 수 있었고 비교적 빠른 기간에 한 사람의 영업대표로서 제 몫을 해낼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의 온보딩 교육

싱가포르에는 여러 다국적 기업의 아태지역(Asia-Pacific; APAC) 본부(headquarter; HQ)가 있다. 몇몇 외국계 기업은 싱가포르 HQ에 신규 입사자를 모아놓고 정기적으로 온보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오라클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과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고, 약 1주일 간 센토사섬 샹그릴라 호텔에 머무르며 아태지역 다른 국가에서 온 수백 명의 동기들과 온보딩 교육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첫 외국 출장, 화려한 싱가포르의 불빛과 쾌적한 호텔,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과의 교류.. 모든 요소가 1주일 동안 나의 애사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1주일 동안 회사, 솔루션, 영업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APAC 각지에서 모인 수백 명의 동료들과 여러 국가의 시장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브레인스토밍, 롤플레잉 등을 진행했었다. 이 경험을 통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관점에 대해서도 알아가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고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달콤했던 싱가포르 온보딩 교육의 기억들

#직무교육 및 팀장님의 OJT

온보딩 교육 이후 영업 관련 실무 교육이 여러 번 있었다. 내부 및 외부에서 강사들이 와서 B2B 영업에 대해 교육을 진행했고 잠재고객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메시지로 어프로치 하는 방법, 링크드인 등 소셜 네트워크 관리를 하고 이를 영업에 활용하는 방법,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방법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통해 익혔던 노하우들을 재확인하고 가다듬는 시간이었다.

또한 입사 후 몇 개월 동안 주요 고객 미팅에 팀장님이 동행하여 많은 도움을 주셨다. 첫 한 두 곳은 미팅 동행뿐만 아니라 고객사의 구조 및 니즈 파악, 제안 솔루션 구성, 제안서 작성 등 영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한 가이드 및 코칭을 해주셨다. 비록 초반에 같이 작업했던 딜들이 성사되진 못했지만 코칭 하에 제안 준비를 하며 실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나를 이끌어준 버디, 그리고 입사 동료들

몇몇 외국계 기업에서는 신규 입사자의 온보딩을 돕기 위해 온보딩 버디(onboarding buddy)를 지정한다. 내 경우 한 분이 형식적으로 지정되긴 했지만 나보다 먼저 팀에 합류한 모두가 나의 버디 역할을 해주었다.

회사에 가장 오래 다닌 주 대표님은 사내 시스템을 꿰고 있었고 내가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 인프라 세팅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모든 영업직은 영업대표(Sales Representative), 줄여서 OO대표라  불렸다) IT 영업을 10년 이상 해온 이 대표님은 1개의 딜을 같이 진행하다시피 하며 영업 노하우, 수주 프로세스에 대해 낱낱이 알려주셨고 덤으로 경력 개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유난히 친화력이 좋은 임 대표님은 회사 내 다른 부서 사람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해주며 사내 네트워크를 키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날 입사한 J 대표님은 내가 지쳐있을 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언제나 따뜻한 조언을 해주신 J 대표님 덕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고 팀에 더욱 소속감을 가질 수 있었다. 입사 3개월 차 초반의 패기가 줄어들고 딜이 터지지 않아 답답해하던 때 그가 보낸 링크드인 메시지(를 가장한 편지)가 있는데, 아직도 힘을 얻고 싶을 때마다 이를 꺼내보곤 한다.



여러 교육을 거치며 팀원들 및 부서원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어느덧 허니문 기간이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입사 전 새로운 회사와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중 대부분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의 탄탄한 온보딩 프로그램과 팀장님 및 동료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회사, 부서,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3-4개월 차부터는 고객 미팅을 본격적으로 하며 한 명의 영업대표로서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특히 B2B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3개월 내에 성과를 내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당장 업무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초연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자. 열린 마음으로 회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조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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