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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준현 Feb 27. 2020

04. 첫 번째 퇴사, 그리고 시작된 고민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2014년 가을, 짧았던 6개월의 일본 방송사 고객센터 경험을 뒤로하고 퇴사를 했다. 고객센터에서 배운 게 참 많았지만, 외노자 라이프가 맞지 않았던 나는 급히 모국행 비행기표를 끊었었다.


조금씩 의식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 회사에서 오래 있는 성향이 우리나라보다 강하다. 마이나비에서 201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신입사원 800명 중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21.8%라고 한다. (출처) 요즘같이 이직이 잦은 시대에 나는 이 수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10~20년 전 같은 설문조사를 했다면 아마 과반수 이상이 정년까지 한 회사를 다니겠다고 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사회에서 빠르게 퇴사를 한 사람은 조직 적응 실패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1년도 안 돼서 퇴사를 한 경우 실패자 낙인이 찍힐 수도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1년 이상은 같은 회사에서 버티는 신입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6개월 만에 퇴사를 하며 지인에게 '네 인생은 이제 실패했어. 넌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 취업 못 할 거야'라는 악담을 듣기도 했다. 이런 악담을 한 지인과는 연을 끊었다.


원체 긍정적인 사고를 즐기기에 '괜찮아, 앞으로 잘 될 거야! 내게 맞는 직업도 잘 찾을 거야!'라는 생각을 줄곧 하려고 했지만, 모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선 설렘보다 불안이 컸던 것 같다.

'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6개월 만에 첫 회사를 퇴사한 나를 선입견 없는 눈으로 봐줄까?

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것 같다.


그렇게 걱정을 안고 도착한 집에선 가족이 나를 반겼다. 타지에서 짧았지만 고생했다며 다독여주는 가족의 품 안에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가을, 취업 시즌이었다. 첫 직장에서 적응에 '실패'하고 돌아온 나는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수많은 생각 중에 "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1년 전의 내가 취업의 'ㅊ'도 모른 채 취업 준비를 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방송사 일을 택했었다면, 1년 후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존재라 했던가. 두 번째 하는 취업이라 그런지 다행히 이는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직장 동료들과. 이 사진에 필자가 숨어있습니다..ㅎㅎ (출처: 더스쿠프 기사)


#스타트업

첫 직장은 임직원 수가 만 명이 넘어가는 대기업이었다. 인프라, 체계적인 교육 등 대기업의 장점은 많았지만,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비효율적인 관행이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당시 회사에서 Microsoft에서 서포트하지 않는 오래된 윈도우 버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낮은 업무효율에 지친 사원들이 윈도우 업데이트를 건의했으나 결재에 결재를 거치는 동안 건의가 사라졌었다. 또한 도제식 교육 하에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었는데, 이로 인해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직장은 좀 더 주체성을 갖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작은 조직 위주로 알아봤고, 직원 수 100명 이하의 기업들만 찾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스타트업들에 눈길이 갔다.


#영업

첫 직장에서 영업을 해보고 싶었으나 콜센터에 배정되었던 나는 스타트업에서 영업이 하고 싶었다. (이전 포스팅 참고) 2015년에 일기처럼 남겨놓은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세일즈를 하는 이유가 이렇게 적혀있다.


1) 가장 어려운 일

지인이 아닌 순전히 모르는 사람이 돈을 쓰게 만든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첫 계약을 따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2)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일

영업을 잘하면 마케팅, 기획 등 다른 직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일즈를 하다 보면 내 회사 제품의 기능에 대해 완벽히 알아가고, 그 기능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지 또는 어떤 점이 매력 없게 느껴지는지 알아갈 수 있다. 또 현장에서 수많은 잠재고객들과 만나며 어떤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좋아하는지, 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회사의 다른 누구보다 가장 빠르게 깨닫는 것 같다.

머리는 이상을 좇되, 현실 감각을 잊지 말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들 중 하나다.

내가 영업을 하는 이유이자, 영업을 하면서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지 않나 싶다.

5년 전 쓴 글인데 상당히 오글거리지만 지금도 이런 영부심(영업에 대한 자부심)에는 변화가 없다.

감사히도 두 번째 직장에서는 내 적성을 찾을 수 있었고, 이후 6~7년간 쭉 영업의 길을 걷고 있다.


만약 첫 직장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사했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두 번째 시도에서 내게 맞는 회사와 직무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

낙담하는 시간은 조금만 갖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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