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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Jan 17. 2024

정말로 고귀한 침묵이었습니다.

나의 첫 명상 수행기 - 위빳사나에서의 10일


열흘간의 위빳사나  명상수행 경험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글에는 코스 기간 동안 얻은 개인적인 깨달음과 위빳사나의 가르침을 담습니다. 

글은 꼭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열흘간의 위빳사나 명상 기간 동안에 저녁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신수련생의 경우 오후 5시경 마지막 음식으로 차와 간식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 


아직 코스가 시작되기 전인 접수 당일에는 간단한 저녁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코스 시작 전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서자 벽을 향해 일렬로 배치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벽 곳곳에는 '고귀한 침묵'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섞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테이블 배치부터 신경을 썼구나 싶었습니다.

아직 고귀한 침묵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잠시의 휴식 시간이 지난 후 식당에서 OT를 받았습니다.

생활 수칙 안내, 담당 매니저들의 인사 등 간단한 OT가 끝나고 코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때부터 위빳사나 코스의 다섯 계율 중 하나인 침묵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코스 시작 후 첫 단체 명상 시간이 있었습니다. 

명상 시작 전, 코스 기간 동안 안게 될 개인 방석 번호를 배정받고 

침묵 속에 한 줄로 천천히 명상 홀로 들어갔습니다. 


단단하고 무거운 입구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어 신장에 넣어둔 후 

명상 홀로 들어가는 하얀 문을 여니 

1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홀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녀가 따로 앉도록 분리된 공간에는 번호가 붙은 방석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낮은 조도의 공간에는 엄숙함이 느껴졌습니다.

입구 반대편 벽 쪽에는 네 분의 선생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셨습니다. 


배정받은 방석 번호를 확인한 후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각자 편안한 자세를 찾아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던 시간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의 순간.

커다란 공간에는 조용한 정적만이 감돌았습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눈을 감고 앉아있는 고요의 시간 동안은 

마치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우주 속에 홀로 떠있는 별 같은 느낌이랄까요?


처음 느낀 그 침묵의 순간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평안한 고요. 

고귀한 침묵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침묵은 마지막 열흘째 아침이 지나고 해제되는 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열흘 가량의 침묵 수행을 하는 동안 

나의 마음이 외부의 휘둘리지 않고 나의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침묵이 해제된 후 침묵의 고귀함에 대해 더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서로 대화했다면 각자의 수행을 비교 하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떠올리거나 혹은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하느라 

수행의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것입니다. 





위빳사나 명상 코스에서 침묵의 계율을 지키도록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을 통한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실수하고 후회하게 되는지요?

또 얼마나 많은 말들에 상처받고 휘둘리고 마음을 쓰게 되는지요?


누군가를 위하려는 말조차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침묵하는 순간보다 말을 뱉은 후 후회하고 사과하는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부대끼며

전보다 조금은 더 침묵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차올라 말로 내뱉기 전

내 안에 이는 감각들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안으로 관심을 돌려 호흡에 집중하며 말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이내 사그라들고 

외부의 일들도 조용히 잘 마무리되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고귀한 침묵.

첫 침묵의 경이로운 순간을 기억하며

말을 하는 순간 보다 

하지 않는 순간의 힘을 

삶에서 더 많이 키워가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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