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내가 맡은 일중 가장 좋아하는 업무다. 인터뷰이는 다양했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학생, 직업인 등 꽤 다양한 상황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귀를 기울이면 저마다 신나서 자신의 세계를 들려줬고 그 과정은 늘 새롭고 신기했다. 집중도가 높은 일이라 대화를 마치면 살짝 피곤하긴 했어도, 2시간 동안 사람과 세상에 대해 특별 훈련을 받은 것처럼 생각의 폭이 대폭 수정되곤 했다.
가장 강렬했던 인터뷰는 S 건축가를 만났을 때였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녹취를 푼 뒤 주제에 맞게 얼개를 짜 내용을 정리한다. 아무래도 말이다 보니 비문을 사용할 때도 많고 적절하지 않은 비유나 단어를 쓸 때가 있어서 문장을 다듬는 일은 인터뷰 정리에 꼭 필요한 업무다. 그런데 그분의 말은 고칠 것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완벽했다. 심지어 답변에 어, 음, 에 같은 감탄사조차 없었다. 질문의 의도를 꼭 내 마음처럼 파악했고 그에 100% 해당하는 답변을 정확하고 논리적인 완결 문장으로 이야기했다. 녹취를 풀며 이토록 완벽한 구어체를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탁월하다는 말의 뜻을 녹취를 풀며 실감했다. 말의 사용도 건축처럼 하는 분이구나 싶었다.
가장 감동했던 인터뷰는 사회학자인 K 교수님을 만났을 때였다. 이야기 나눌 시간이 한 시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장소는 자택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작가와 함께 교수님 댁으로 가면서도 책으로만 만나던 분을 갑자기 집이라는 공간에서 뵌다고 생각하니 조금 얼떨떨했다. 사진 촬영과 이야기를 마치니 한 시간 반을 살짝 넘어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준비해 간 인터뷰를 빠르게 진행했고 다행히 들어야 할 답변은 다 들었지만 더 많은 질문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 나는 울기 직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사려 깊은 사회학자의 시선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내가 무척 티 나게 아쉬워했는지 성공회대로 가는 지하철에서 답변을 더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갈 시간을 공지한 터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 전담 변호사를 인터뷰했을 때는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자꾸만 먹먹해졌다. 반면 의료협동조합 의료인을 인터뷰했을 때는 어쩌면 이 삭막한 서울에서도 ‘이웃’이라는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차올랐다. 초등학교 내의 용돈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매점 기본소득을 도입한 선생님, KTX 기관사, 화이트해커, 책을 처방해주는 독립서점 대표, 글 쓰는 정신의학과 의사, 고전문학평론가, 난민인권 활동가, 과학커뮤니케이터…. 전부 기록할 수는 없지만, 처음 보는 내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 고마운 분들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해 대단히 지적인 이해가 있으면서 동시에 사려 깊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는 우연찮은 기회로 인터뷰라는 업무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에 나름대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a.k.a 유명인), 발 디딘 곳에서 자기 몫의 땅을 묵묵히 일궈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2시간만큼은 특별함과 평범함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롯한 인물이었고 그 말은 들어본 적 없는 고유한 이야기였다.
일을 하며 숨죽여 울었던 날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귀 기울이는 내게 자신의 시간을 내주고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던 사람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둘레를 조금은 넓힐 수 있었다. 2시간 동안의 만남은 냉혹한 세상 앞에 자꾸만 작아져가는 나를 위한 특별 레슨이었다. 가끔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열리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