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by 시옷


점심을 먹다가 동료가 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태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자유를 획득하는 길 같다고.

예전에는 공기만큼 가벼워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Y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곧 날아가 버릴 작은 새 같아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웠다고 한다. (작은 새! 나는 Y를 처음 봤을 때 로봇 같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미안해진다. 여하튼 행동은 로봇 같아도 표현이 자상하고 아기자기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무언가를 아끼는 마음은 언제나 내 발을 무겁게 만든다. 중력에 순응하는 이유는 순전히 아끼는 마음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사노 요코의 『백만 번 산 고양이』를 만났다. 사실 두 번 읽을 때까지는 백만 번이나 태어나게 만든 작가의 집요함을 공감할 수 없었다.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은 집요함. 그렇지만 자기 자신으로 살며 타인을 사랑하는 삶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집요함이었다.

백만 번이나 태어난 고양이가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자신으로 살며 남을 사랑하는 삶의 깊이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우물을 벗어나 진짜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을 사랑할 때라는 작가의 통찰에 공감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다. 나르시시스트 고양이는 드디어 타인의 부재 앞에 상처 받는 고양이가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행복하면서도 슬펐다.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든 헤어짐은 찾아올 텐데, 그날을 생각하면 밥을 먹다가도 어김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도저히 가벼워질 수가 없다.

하지만 두려움과 미련에 매몰될 이유도 없다. 진짜 사랑의 경험은 존재의 부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러니까 존재가 부재할지라도 사랑의 흔적까지 부재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생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언젠가 쉽게 잠들지 못하던 밤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은 훗날의 실망과 용서, 부재까지 모두 안아줄 만큼 크구나. 그 생각이 들자 거짓말처럼 졸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도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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