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 속,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의 멋진 레스토랑. 우리가 꿈꾸고 그리던 그 레스토랑이 한국에 생긴다면 어떨까? 그것도 단 하루만. 신기루 같은 마법의 레스토랑이 MBC에 파일럿으로 뚝딱 문을 열었다. 아름답고 신비한 <신기루 식당>이다.
사실 '잠깐 문을 여는 팝업 식당'이라는 콘셉트는 시청자들에게 지겨운 감이 없지 않다. 윤식당, 강식당을 필두로 TV 속 다양한 식당들이 열고 닫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외국에서 맛있는 한식을 팔며 외국인들의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며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연예인들이 직접 조리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서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도 지켜보았다. 이제는 식상해진 레스토랑이라는 소재. <신기루 식당>은 과연 어떻게 풀어갈지 프로그램 제목을 듣자마자 궁금했다.
<신기루 식당>은 한식의 화려한 변신으로 지친 이들에게 '음식으로 힐링을 선사하자'는 콘셉트로 기획됐다. 첫 <신기루 식당>의 위치는 강원도 인제였다. 인제의 다양한 특산물들을 콘셉트로 식당 문이 열렸다. 박준형, 정유미, 라비(빅스) 외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더 프렌치 런드리 주방 출신인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전통주 소믈리에 더스틴 웨사가 함께했다.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식을 먹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알고 있던 기존의 식재료들의 변신에 보다 집중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식재료를 다르게 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익숙함을 특별함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 사소한 변화다. 식상한 식당 열기 콘셉트를 다르게 만든 주인공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우리 식재료의 변신이었다. 아름다움과 멋으로 맛을 낸 식재료들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 코스는 개복숭아에 당근 시럽을 뿌리고 산초잎으로 향을 낸 피치 스낵으로 익숙하면서 독특한 향으로 입맛을 돋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코스요리는 출연진들이 산에서 직접 채취한 버섯과 부추꽃으로 순두부의 식감을 살린 커스터드다. 계란찜 같은 식감으로 식재료로 잘 사용하지 않는 부추꽃에서 나는 향기가 일품이란다. 당일 아침에 채취한 버섯은 건강하고 정성이 흠뻑 느껴지는 요리다.
메인 디쉬인 명이나물과 오미자, 돌나물, 드라이플라워를 곁들인 1++한우 스테이크는 보기만 해도 힐링을 선사하는 요리였다. '위에서 바라보는 인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디저트는 메인보다 더 특별했다. 무스케이크에 솔방울 초콜릿으로 인제의 강을 표현하고, 돌배 절임, 돌배 캐러멜로 맛을 표현했다. 드라이아이스로 안개가 살포시 얹어진 디저트는 인재의 자연을 흠뻑 즐기며 그림 한 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 멋진 플레이팅의 요리들이 한국의 식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따라 만들어볼 수 도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던 것은 익숙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의 맛있는 요리들을 따라 하고 싶어도 낯선 식재료들의 이름이 나열될 때마다 금세 포기했던 것이 사실이다. 레시피를 공개해달라는 다른 시청자의 의견처럼 난이도 있는 요리들이었지만, 익숙한 맛을 내는 친숙한 재료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화려한 비주얼의 익숙한 맛. 요리를 먹는 출연 손님들도 신기해하며 금세 적응해 아름다운 요리를 즐길 수 있었던 이유다.
<신기루 식당>의 그림 같은 요리들을 보면서 시각적으로 힐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왜일까? 자주 보았던 익숙한 패턴들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테이블 번호를 매겨 서빙 순서를 정한다든지, 서빙을 하면서 헤매는 모습이나, 손님들의 감동하는 반응들이 그것이다. 식재료에 초점을 맞추고, 아름다운 장소로 차별화를 두었지만, 식당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익숙한 식재료의 변신, 힐링 플레이스라는 명확한 콘셉트는 있었지만, 시선을 계속 잡아끄는 특별함이 부족했다. 물론 중간중간 박준형의 엉뚱함으로 재미와 유쾌함이 더해졌지만, 이미 익숙한 패턴의 식당 운영은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아 온 손님들은 인제와 관련이 있거나, 인원수를 다르게 구성하며 다양성을 꾀했지만, 힐링이라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에 특별함을 얹어주지는 못했다.
차라리, 서프라이즈 콘셉트로 일상의 신기루처럼 깜짝 카메라나 프러포즈를 한다거나, 한식에 익숙한 어르신들 중 정말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사연을 담아 특별함을 더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맨드라미 꽃술 같은 전통주 등 한식의 아름다움을 보다 더 집중해서 보여주고, 힐링과 식재료라는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극대화시킨다면 진정으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미식 판타지를 볼 수 있는 <신기루 식당>을 오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다.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순간을 늘 꿈꾼다. 특별한 순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어떤 공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복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공간, 자연 속 힐링의 순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머나먼 이국이 아닌 국내의 아름다운 자연 공간의 특별한 변화를 보여주는 <신기루 식당>은 보는 것만으로 특별한 힐링을 선사했다.
그 특별한 공간 속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메인 MC격인 출연진은 없지만, 박준형, 정유미, 라비의 진행과 서빙은 친절하고 유쾌했다. 특히, 외국인 메인 셰프와 소믈리에 더스틴의 존재로 전문적이고 화려한 레스토랑이 완성되었다. 앞으로 방영이 된다면, 인제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양한 곳의 좋은 식재료들을 두루 조명하고, 따라 하고 싶은 멋있고 아름다운 한식의 모습이 지금처럼 멋지게 비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지친 일상의 쉼표 같은 식사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도 보다 뚜렷해진다면, 매주 챙겨보고 싶은 좋은 힐링 파일럿 프로그램일 거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할 소중한 사람들과의 한 끼를 함께할 <신기루 식당>. 신기루처럼 나타날 다음 로케이션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