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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May 15. 2020

배음 (Harmonics)

음악이론의 꽃, 음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

모든 자연적인 음은 하나의 단순 진동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진동이 결합된 복합적인 진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잠시 언급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지난 글에서 예로 들었던 바와 같이 양 끝이 고정된 줄 가운데를 세게 튕기면 그림과 같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진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진동을 확대하여 관찰해보면 줄 양 끝의 전체 진동뿐만 아니라 보이진 않아도 수많은 다른 잔진동들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이 세부 진동들을 하나씩 나눈다고 해보자.


기본음과 정수배의 부분음

이렇게 전체 진동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세부 진동들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이 중 가장 진동수가 낮은 1번 진동을 '밑음'(기본음(기음). 들었을 때 가장 크게 들리며 실제 연주되는 음)이라 하고 나머지 결합된 미세한 음들, 즉 2번부터 나열된 음들은 '부분음'이라고 한다. 모든 자연음은 이와 같이 실제 들리는 음인 밑음(기본음)과 여러 개의 부분음들이 결합된 '합성음'의 형태를 가진다.

이러한 부분음 중에서 그 진동수가 기본음의 정수배로 나타나 규칙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가 있는데(옆 그림과 같이), 이를 '상음(overtones)'라고 하며 곧, '배음(harmonics)'이 된다.

배음 진동 비율이 기본음을 기준으로 1 : 2 : 3 : 4 : 5 등으로 조화로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100c/s 높이의 음을 연주하면 배음은 자체 진동수의 정수배인 100, 200, 300, 400c/s... 등의 음들로 나타난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고른음은 규칙적인 진동을 가지는데 이는 곧, 기본음의 정수배의 진동인 배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면, 배음은 고른음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부분음이 없는 음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부분음 없이 자신의 기본 진동만을 가지는 음을 '순음'이라고 부른다. 모든 자연적인 음은 결합음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순음과 비슷한 소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부분음이 아예 없는 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전자 기계의 도움으로 하나의 단순 진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가끔 TV 등의 전자기기에서 '삐---'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소리가 바로 1개의 사인파로 이루어진 순수한 소리, 순음이다. 순음은 음파가 단 하나이기 때문에 단조롭고 음색의 특징이 없으며 굉장히 곧고 정확한 소리를 낸다.

20세기 이후 전자음악이 발전하면서 이 순음을 재료로 하여 작곡한 곡들도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곡을 끝까지 다 듣게 된다면 아마 귀가 얼얼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sample 01_

Stockhausen - Studie 1 (1953)

독일의 작곡가 슈톡하우젠은 현대 전자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그의 초기 작품인 Studie 1(습작 1)은 Sine tone generator로 녹음된 순수한 사인파를 테이프에 녹음한 후, 테이프를 잘라 음의 음량, 음색 등을 조절하여 원하는 곳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sample 02_

Dave Seidel -  ~60Hz (2014)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전자음악이다.



다시 배음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배음을 자세히 나누어 설명할 만큼 음악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바로,

배음에서 발견되는 자연적인 질서와 원리가 서양음악(클래식)에 있어
아주 아주 중요한 이론적 토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 배음의 특징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C음을 밑음(기본음)으로 하는 배음을 예로 들면, 위와 같은 정수배의 배음들이 나타난다. 이 배음렬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배음의 특징은 한 옥타브 관계의 음의 비율이 1 : 2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음렬 안에서 어떤 음이든지 진동수가 그 음의 두 배가 되는 음은 모두 한 옥타브 차이가 나고 있는데, 기본음을 포함한 2, 4, 8, 16 배음은 높이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C음이고(파란색) 3, 6, 12 배음은 모두 G음으로(주황색) 각각의 옥타브마다 1 : 2 비율로 계산된다.

 

2. 배음의 진동비가 단순할수록 밑음과 가깝고 어울리는 관계이다. 배음렬에서 진동비에 따라 순서대로 나타나는 음정은 완전8도(1 : 2, 옥타브) - 완전5도(2 : 3) - 완전4도(3 : 4) - 장3도(4 : 5) - 단3도(5 : 6)... 순으로, 기본음과 가까운 진동일 수록 더 어울리는 음정으로 계산된다. 같은 음인 1도를 포함한 완전1, 4, 5, 8도는 '완전 어울림음정'에, 장. 단3도는 '불완전 어울림음정'에 속한다. 반대로 그 비율이 복잡하고 멀어질수록 밑음과 안어울리는 음정으로 계산된다.

특히, 같은 음인 옥타브를 제외하고, 다음으로 나타나는 가장 가까운 음인 G음(완전5도)은 서양음악의 이론적 핵심으로 여겨지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이다. '완전5도(Dominant)'는 기본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중요한 음정으로, 특별히 조성 음악 안에서 음 사이의 견고한 위계질서를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3. 배음은 또한 3화음의 형성 원리를 보여준다. 화음은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리는 현상을 말하는데, 3화음은 음을 3도 간격으로 쌓아 올린 화음을 뜻한다. 서양음악의 기본 요소로 꼽히는 '화성(harmony)'은 3화음을 기초로 하며, 이 3화음의 이론적 근거를 배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배음렬 중 기본음에서부터 출현하는 음을, 중복된 음은 제외하고, 순서대로 쌓아보면 위 그림과 같이 나타난다. 이들을 수직으로 쌓아 나열하면 아래와 같이 여러 성질의 3화음(장, 단, 증, 감)과, 화성에서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속7화음(Dominant 7th)이 만들어진다. 이렇듯 배음 현상에서 얻어지는 화음들을 통해 화성의 기초적 토대를 찾아볼 수 있다.

『화성학 (백병동, 수문당』


고대 그리스 시대, 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타고라스는 두 음의 음정 관계를 수적 비율로 계산하였던 최초의 학자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이 원리를 대장간에서 발견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대장간 옆을 지나가던 피타고라스는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망치소리가 각각 다른 음을 내면서도 서로 듣기 좋게 어울리며 울리는 것을 발견하였고 당장 그 원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망치들의 무게를 달아 각 망치의 무게 사이에 정수비가 성립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를 통해 그는 결과적으로 1 : 2 비율은 옥타브 음정, 2 : 3 비율은 완전 5도, 그리고 3 : 4는 완전4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배음에 대한 이론적 내용이 전혀 없었던 당시,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이 원리가 이후 서양 음악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수와 음악, 수적 조화와 질서라는 자신의 철학으로 많은 음악이론의 토대를 정립하여 '최초로 음악이론을 만든 학자'라 불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당대의 다른 학자들도 많은 음악이론 사상을 세웠다고 하니, 혹자는 서양음악의 모든 이론적 토대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 다 완성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배음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음악이론에 관한 내용을 진행하면서 계속적으로 언급될 예정이다. 배음의 원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다면 음악이론 전반에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서양음악이 정립되는 과정 자체가 대부분 자연적 원리를 뒤따르는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시대가 흐를수록 변하게 되지만) 집에 피아노가 있다면 한 번 위 악보처럼 C음을 치고 나는 어떤 배음이 찾을 수 있나 유심히 한 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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