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기록으로 붙잡다
기록이라는 것이 인간 역사의 위대한 유산이듯, 귀로만 듣던 음악을 눈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기보법의 탄생은 음악사적으로 매우 주목할만한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음악은 언어가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악보를 본다는 것은 마치 다른 언어를 대하는 것 마냥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거의 비슷하다. 필자는 악보를 보기 위해 배워야 하는 많은 음악 용어와 기호들이 외국어처럼 다른 언어 체계를 배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다른 언어에 비해 약간의 의구심과 거부감(?)이 드는 부분은 굳이 음악을 읽어가며 해야 할 필요성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귀로 듣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새로운 언어 배우듯이 공부를 하면서 봐야 하다니! 본질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악보는 음악에서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악보의 탄생으로 인해 음악을 대하는 인식과 가치관이 변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언어를 기록할 때 정렬하여 글자를 적는 것처럼, 음악을 기록하고 읽기 위하여는 기본적으로 '보표(Staff)'가 필요하다. 보표는 수평으로 그어진 5개의 평행선 '오선'에 '음자리표'를 표기한 것으로, 이번 글에서는 보표의 구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
먼저 오선(5선, 五線)은 다섯 개의 줄과, 줄과 줄 사이의 네 개의 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다섯 줄과 네 칸에 음표를 사용하여 음을 표기할 수 있다. 사실 오선보를 보는 방법은 꽤나 직관적이기 때문에, 읽는 데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다. 높은음을 위에, 낮은음을 아래에 표기하여 음의 상대적인 높고 낮음을 시각적으로 잘 나타내며, 줄과 칸을 번갈아가며(줄-칸-줄-칸) 계단처럼 음을 순차적으로 표기하면 된다. 읽는 방향 또한 보통의 글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음이 오선을 벗어나 진행될 경우 오선 위, 아래에 짧은 덧줄을 그어 표기할 수 있다. 하지만 덧줄을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아무래도 악보 읽는 것이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옥타브 기호를 사용하여 읽기 쉽게 표기할 수 있다.)
음악을 기보 하는 방법은 긴 역사를 지나 점차 발전해왔다. 구전 전승으로만 내려오던 음악을 처음 기보 하기 시작한 시기는 약 9세기경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선율의 방향만을 간단히 표시하여 정확한 음고와 길이를 악보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11세기경 한 '선(Line)'을 사용하게 된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하나의 기준이 되는 음에 수평선을 그어 그 선을 중심으로 상대적 음고를 나타낸 것이 보표의 근원이 되었고, 이후 수도사 귀도 다레초에 의해 F음은 붉은 선, C음은 노란 선으로 표시하여 선과 칸을 이용해 음악을 표기하는 기보 방법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래 그림)
이 방법으로부터 차차 발전되어 오랫동안 4선보가 일반화되었으며, 이 4선보가 더욱 발전하여 현재의 오선보가 규정화된 것이다.
또 그림에서 나타나듯 초기에는 각 선과 칸이 나타내는 음을 왼쪽 여백에 문자로 (그림에 아래부터 f, a, c, e) 표기하여 정확한 음고를 알 수 있게 하였는데, 이렇게 줄의 음을 규정하는 방식이 오늘날의 음자리표로 진화하게 되었다.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Grout 외, 이앤비플러스)』
오선과 음자리표를 나눠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그어진 수평선 자체가 애초에 절대음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선이기 때문에 오선보, 보표(Staff)라는 개념 안에 오선과 음자리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자, 오선에 위와 같이 한 음을 그려보았다. 이 음이 어떤 음을 가리킬까?
오선 위의 놓인 음표만 가지고는 음의 상대적인 높고 낮음만 파악할 수 있을 뿐, 그 음이 정확히 어떤 음을 가리키는지 특정한 음높이는 알 수 없다. 때문에 음표의 절대적인 음높이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음자리표(Clef)'가 필요하다. 현대에는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음자리표가 사용된다.
음자리표는 쉽게 이야기하면 그 음자리표가 표시된 줄의 음높이를 정해주는 기호로서, 특별히 중요한 C(으뜸음/Tonic), G(딸림음/Dominant), F(버금딸림음/Sub-dominant) 음을 정해주는 세 개의 음자리표가 있다. 각 음자리표는 그 음을 나타내는 문자가 변형, 발전되어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규정되었다.
G clef/ 높은음자리표
∙ G자를 변형한 음자리표로 놓인 둘째 줄의 음을 G음(솔)으로 정해주는 음자리표이다.
∙ 주로 높은 음역을 기보 하는 데 사용되어 높은음자리표(Treble clef)라고도 한다.
∙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오르간(높은 부분) 등 높은 음역의 악기 기보에 이 음자리표가 사용된다
F clef/ 낮은음자리표
∙ F자를 변형한 음자리표로 놓인 넷째 줄의 음을 F음(파)으로 정해주는 음자리표이다.
∙ 낮은 음역을 기보 하는 데 사용되어 낮은음자리표(Bass clef)라고도 한다.
∙ 첼로, 더블베이스, 바순, 트롬본, 피아노/오르간(낮은 부분) 등 낮은 음역의 악기 기보에 이 음자리표가 사용된다.
C clef/ 가온음자리표
∙ C자를 변형한 음자리표로 오선 각 줄에 놓여 놓인 줄의 음을 C음, 특별히 middle C(가온 도/C4/261.6Hz)로 정해주는 음자리표이다. 때문에 가온음자리표(Middle clef)라고도 한다.
∙ 음자리표가 어느 줄에 놓이는 가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표로 불리는데, 즉 C clef는 각 성부에 따라 적합한 음역에 맞게 음자리표를 조정해서 사용하였으며, 사용 당시 음악(중세음악)이 주로 성악곡 중심이었음도 이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다.
∙ 지금은 유럽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용하지 않으며 알토표와 테너표만이 남아 실제 음악에 사용된다. 알토표는 비올라 기보에 사용되고, 테너표는 첼로, 바순 등의 중고음역에서 사용된다.
중세시대의 악보를 보면 4선보 왼쪽 끝부분에 일정한 모양의 기호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기호가 바로 음자리표이다. 당시 음자리표는 지금의 형태와 많이 다르게 생겼는데, 왼쪽의 악보에 사용된 음자리표는 C clef로 걸쳐진 줄의 음을 C음으로, 오른쪽 악보에는 F clef가 사용되어 해당 줄을 F음으로 결정해주고 있다. 이 음자리표들이 점차 지금과 같은 C clef, F clef의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다음은 모두 같은 음인 가온 도(middle C)를 각 음자리표로 표기한 것이다. 음자리표의 따라 같은 높이의 음이라도 그 위치가 모두 다르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많은 음자리표들이 필요했던 이유다.
높은음자리표(G clef)의 경우 가온 도가 상대적으로 아래에 있어 그 위의 음들을 적기에 유리하고, 낮은음자리표(F clef)는 반대로 가온 도 아래의 음들을 적기에 용이하다. 알토표(Alto clef)의 경우, 가온 도가 오선 정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그 음을 중심으로 위/아래 음(알토 음역)을 적기에 용이하다. 이와 같이 어떤 음자리표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오선에 적기 용이한 음역대가 달라지게 된다. 즉, 사용되는 악기의 음역에 따라 오선의 활용도를 최대한으로 할 수 있도록, 악보 읽기에 최대한 쉬운 방향으로 음자리표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음악을 기보 하는 방식은 각 나라별로 모두 다르지만 (국악은 우리나라 고유의 기보법인 정간보를 사용한다.) 현재 서양식의 오선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기보로 사용되고 있다. 어린아이가 처음 글자 공부를 시작하는 것처럼, 악보 보는 법을 처음 배울 때에는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음악이라는 매우 주관적이고 오묘한 언어 체계를 읽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인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