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읽는 음악
기보법의 발달이 음악에서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을까? 특별히 오늘은 보표에서 더 나아가 악보의 기능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악보 읽는 법이 중요해진 이유에는 서양음악(클래식)이 기보문화를 바탕으로 발전된 데 있다.
분명 처음 악보의 기능은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음악을 좀 더 쉽게 기억하고 빠르게 습득하기 위한 단순한 기록의 용도로써, 지극히 보조적인 수단으로 기능했을 터이다. 초반에 겨우 선율의 상대적인 흐름만을 따라갈 수 있었던 스케치 수준의 악보는 점차 정교해지고 상세한 음악 언어들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음악에서 악보의 중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클래식만큼 악보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사례가 없는데,
정형화된 기보법과 기보문화의 발달이
당시 음악의 발전 방향과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먼저 음악의 형식과 발전 방향에 끼친 영향력이 주목할 만 하다. 기보라는 수단을 통해 좀 더 복잡한 구성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보법이 발전하게 된 시기는 약 14세기경, 특히 다성음악(Polyphony, 여러 개의 다른 성부가 선율적인 흐름으로 서로 어우러져 나타나는 음악) 양식이 꽃을 피우던 시기와 함께 한다. 음악을 외워서 연주하는 것에 비해 악보를 통하면 서로 다른 성부들이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쉽게 가능해진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성부가 모두 다르게 진행하더라도 눈으로 그 진행을 확인할 수 있어 각 성부 간의 조화로움을 계산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고, 연주자 또한 읽을 수 있는 약속된 보조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합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연습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 외워서 연주한다고 생각해보라)
클래식 연주자들은 오랜만에 만나서도 악보를 나누어 보면서 즉시 호흡을 맞추어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가능한 모습인데, 심지어 수십 명의 합창단이나,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라 하더라도 악보를 보며 빠른 시간 안에 완성도 있는 음악 작품을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보문화로 가능해진 클래식 음악만의 특징이다.
악보의 발전은 인쇄술의 발달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기보법이 표준화된 이후 15세기 중반에 일어난 인쇄 혁명으로, 활자 인쇄를 통해 책뿐만 아니라 심지어 악보 출판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악보 출판. 이제는 책과 같이 본격적인 ‘읽는 음악’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악보 인쇄소의 존재는 상업적 악보 출판과 악보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 가운데 음악이 대중화되고 향유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게 된 셈이다. 게다가 기보문화는 제작과 유통, 소비라는 일련의 상업 프로세스 안에서 악보를 만드는 사람(작곡가)과 악보를 구매하는 사람(연주자) 간 음악적 역할이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계기로도 작용하였다.
어쩌면 악보의 존재는 단순 기술직에 불과했던 작곡가의 신분을 더욱 갑(?)의 위치에 올려놓는 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악보는 단순히 보표에 음표만을 적어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음악적 표현을 위한 악상 기호들(셈여림, 빠르기말, 나타냄말, 아티큘레이션 등)을 통해 많은 메시지를 악보 안에 담을 수 있다. 작곡가의 위상이 시대를 통해 점차 높아지면서 악보의 중요성 또한 함께 커졌다. 악보라는 수단으로 더욱 섬세하고 디테일한 요구들과 작곡자 본인이 추구하고 표현하려는 의도들을 최대한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전문 클래식 연주자들이 악보에 나타나는 언어와 기호들을 주의하여 꼼꼼하게 살펴보고, 어떻게 연주로 표현할 것인지 연구할 것을 강조하곤 한다. 악보는 연주자에게 작곡가가 곡에 담고자 했던 의도를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하여 음악적으로 작곡가와 연주자가 더 풍부한 상호작용을 하도록 소통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적 소통 또한 악보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반대로,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즉흥연주가 클래식 음악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실 악보가 비어있을수록 그 빈 만큼 연주자의 음악적 상상력이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악보의 중요성은 더불어 음악에 엄격한 규정성을 부여하게 되었으며, 이 규정성으로 인해 이전에 성행했던 즉흥연주는 쇠퇴하고 더욱 계획적인 음악으로 발전 방향이 전환되었다. 더욱이 악보를 통해 작곡가와 연주자의 역할이 나누어지게 되면서 음악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쪽은 대부분 작곡가의 몫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악보대로 연주하는가. 기보문화는 작곡가와 연주자간 음악적 소통을 가능케 한 서양음악 문화의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작곡가의 의도만을 작품 속에 관철시키고 외부로부터의 음악에 대한 사고들을 제한시켜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악보의 엄격한 규정성에서 좀 더 자유롭고자 하는 본질적인 질문들이 20세기 전위 음악, 우연성 음악의 탄생 동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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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존 케이지는 우연성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주자이다. 그의 피아노 곡 <4분 33초> 또한 연주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연주도 하지 않는 퍼포먼스(?)로 매우 유명한 작품인데, 말 그대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4분 33초 동안 앉아만 있다가 퇴장한다. 연주하지 않는 연주자, 청중들의 우연한 소리들, 공간에 의한 소리 등 모든 우연적 단편들이 그의 작품이 된다.
사실 많은 철학적 의미와 사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전반적으로 음악의 정의에 대한 도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파격적인 4분 33초의 악보는 총 3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TACET(침묵)이라는 음악 용어만이 각 장마다 적혀있어 1악장은 33초, 2악장은 2분 40초, 3악장은 1분 20초로 총 4분 33초 동안 연주자는 침묵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시 외에도 우연성 음악을 추구하는 음악가들은 추상화되고 정밀하게 구성된 음악에 대한 반발로서 규정된 악보에서 벗어나, 악보의 단편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연주하게 하거나, 음높이를 명확하게 지정하지 않거나, 그림이나 도안 같은 것을 보고 연주자가 연주하게 하는 등 어쩌면 잊혔던 연주자에 의한 즉흥연주로의 회기를 통해 우연성과 창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악보의 역기능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음을 눈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지고 악보의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역설적이게도 음을 귀로 듣는 능력, 즉 소리로 판단하는 능력은 반대로 가볍게 치부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악보의 음표를 보고 연주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본인이 연주하는 소리를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음악은 결국 음, 즉 소리로 만드는 예술이며 그 결과물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섬세한 소리로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본인이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는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 합주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소리를 그 속에 조화시킬 때 진정한 음악적 작용이 피어난다.
때문에 악보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단순히 읽는 것에서 끝이 아닌, 읽은 소리를 들어 악보와 연주를 일치시키는 데 있다. 진정한 연주자는 악보를 정확히 보되, 작곡가가 악보에 담아낸 의도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이로써 본인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악보를 통해 음악을 읽는 진짜 즐거움은 여기에 있다.
주요 참고 문서 : 인쇄혁명, ‘읽는 음악’ 시대를 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8735.html),
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C%97%B0%EC%84%B1_%EC%9D%8C%EC%95%85